글·사진양승민
2014년 부산의 한 대학 연기과 재학시절, 나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수영야류를 접한 후 부산의 전통 탈춤에 푹 빠져 있었다. 전통 장단과 춤사위는 항상 신명과 흥으로 새로운 자극을 주었고, 동기들과 클럽에서 수영야류 말뚝이 춤을 추고 놀 정도로 전통을 즐겁게 향유하던 시절 문득, ‘나는 한국 전통 탈을 쓴 행렬을 데리고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을 할 거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유럽의 전자음악의 강렬한 비트 위에서 춤추는 나그네의 이미지는 참 강렬하고 새로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3년 나는 극단 아이컨택의 대표로 공연예술에 푹 빠져있었다. 2월 오륜동에서 달집태우기 행사를 했고, 극단 형을 따라 그들의 애프터 파티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루츠리딤을 발견했다. 한국 전통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융복합 전통 트랜스 뮤직 밴드였고, 과감했다. 그리고 나는 연락처를 받고 바로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사업이 바로 부산문화재단 청년예술가 자율기획형 사업이었다. 기획과 콘텐츠를 청년의 손에 맡긴다는 사실이 참 매력적이었고, 주저없이 신작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융복합 댄스팀 킬라몽키즈와 협업하여 세 팀의 컨소시움 형태로 프로젝트팀을 만들게 된 것이 틀에디션(Tr-edtion)이었다. 전통(Tradition)의 변형어로 전통을 재해석하고 답습하던 틀과 판을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되자는 신조와 의지였다. 팀 틀에디션은 각 분야의 5-10년 경험자를 중심으로 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하였다. 판소리, 대금, 가야금, 전통타악, 힙합, 스트릿, 탈춤 그리고 그 모든 요소를 포용하는 ‘일장춘몽’이라는 매력적인 콘셉트를 만들어내었다. 어떠한 제약과 검열이 없는, 모두에게 평등한 광장에서 공연함으로써 모두에게 열린 공연을 만들고 싶었던 나는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에서의 초연을 진행했다.
이후 공공기관 및 페스티벌에 초청받았고, 2024년에는 부산탁구세계선수권대회 오프닝 쇼에 초청되기도 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시점부터 나는 세계 무대로의 진출과 연작 시리즈에 대한 갈망이 마음속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국내 페스티벌 초청 공모에 숱하게 낙방하면서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 여실히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고, 공연마다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피드백을 보완했다. 병렬적인 융복합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실력으로 극복하고자 했고, 병렬을 입체화시키는 방향으로 작품의 관점을 비틀어내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 결과, 틀에디션 세계관 두 번째 시리즈인 <틀에디션 : 요괴야류>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 창작산실로 선정이 되었다. 이는 <틀에디션 : 일장춘몽> 이후로 쉬지 않고 작품이 공연될 수 있도록 물고 늘어졌던 집요함과 한국전통문화유산을 새롭게 발굴해내어 우리만의 언어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의 집합체였다. 창작산실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예술지원 시스템 중에서 가장 명망 있는 사업이었다. 이는 틀에디션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검증인 셈이었다. 그리하여 창·제작진을 보완하여 새로 출범한 요괴야류를 10월 20일 초연하게 되었고, 현재는 재공연 일정을 조율하며 국내·외 마켓에 소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틀에디션 : 선견지명>이라는 세 번째 세계관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일장춘몽’의 해외진출 확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극단 따뜻한 사람의 <컨테이너> 프로듀서로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 연극 페스티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잠시 틈을 타서 시비우 야외공연 관계자에게 연락을 했고, 운이 좋게 40분의 티타임을 만들었는데, 그때 <틀에디션 : 일장춘몽>의 모든 자료와 영상을 보여주며 작품을 어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공연장과 초청의지를 확정받았다. 그렇게 나는 감히 투어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준비는 2024년 10월까지 이어져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 다원예술 쇼케이스라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피땀 흘릴 만큼 열심히 했고, 페이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비전만 보고 따라오는 10명의 아티스트에게 보답하고자 구두굽이 닳도록 따라다니고, 미팅하면서 여기 우리가 있음을 알렸다. <틀에디션 : 요괴야류> 초연 준비와 함께 진행했던 터라 에너지드링크 없이 버틸 수 없는 체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만은 점점 또렷해져갔다. 그리고 대망의 쇼케이스가 끝나고 나는 4명의 초청담당자에게 둘러싸였고, 그중 두 곳, 불가리아 Ivan Vazov 국립극장, 폴란드 ULICA 페스티벌과 악수를 했다. 폴란드는 우리 작품을 총 크라코프 외 2개 도시에서 공연할 수 있게 추가적인 투어 공연에 대한 에이전시를 자청하여, 3개국 5개 도시 공연을 확정지었다. 그로부터 2주 뒤 다시 우리는 두 번째 시리즈인 <틀에디션 : 요괴야류>로 광안리 모래를 밟았다. 전통요괴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여 신나는 굿판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은 우리가 누군지 모른다. 우리의 작품이 그 바닷가에서 처음 피어오른 것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곧, 모두가 틀에디션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떠한 검열이 없고, 모두에게 평등한 그곳 광장에서 틔운 야생의 무궁화 한 송이는 이내 유럽에, 아시아에, 머지않아 전 세계에 흩날릴 것이다.
양승민
아이컨택(ICONTAT) 대표, 배우, 프로듀서로, 공연콘텐츠 창·제작을 총괄하고 있으며, 틀에디션(TR-EDITION) 대표이자 연출로 활동 중이다. 또한, 부산연극협회 국제교류예술감독과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콘텐츠 디렉터로서 부산과 국제 무대에서 예술 교류와 창작을 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