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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힘

박보은

겨울은 꽃이 지는 동시에 다음 해의 봄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차가운 땅속에서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이번 겨울호를 준비하며 앞으로 뻗어나갈 힘을 가진 두 작가를 만났다. 그들은 각기 다른 작업 방식을 택하지만, 비슷한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배하람 작가는 강아지풀로, 신영주 작가는 토우로 각자의 길을 만들어낸다. 배하람 작가는 강아지풀과 같은 잡초를 다루며, 이들이 땅을 파고들어 더 자라날 거라는 희망을 건네준다. 신영주 작가는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존재들에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전달한다. 그렇게 11월 말,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나온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며 두 작가의 작품 앞에 마주 서 보았다.

배하람 작가와 신영주 작가의 작품은 각각의 지형도로 드러난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지형도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반경을 보여준다. 흘러가듯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힘이 땅 위로 자리 잡고, 이들의 작품은 일반화에서 벗어난 길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형도’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배하람 작가는 흙 속에 자리 잡은 흔하디흔한 ‘강아지풀’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길을 거닐며 마주한 강아지풀을 뿌리 형태의 지형도로 나열하고,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길을 이미지와 그림의 콜라주 방식으로 확장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힌 강아지풀은 마치 그가 거닐며 마주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상에서 마주한 수많은 강아지풀은 명함 위로 재현된다. 명함은 우리가 일상에서 여기저기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흩뿌려진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했던 전화번호 때문에 쓸모가 없어진 명함에 잡초로 분류되는 강아지풀을 그려 넣음으로써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땅에서 자라나는 풀 중 쓸모없는 존재들을 잡초라는 이름으로 정의 내린다. 작가는 우리의 시각에서 쓸모가 없는 존재를 쓸모없어진 명함을 통해 뒤집는다. 끝도 없이 퍼져나가는 강아지풀들의 본질에 집중하여 새롭게 그려낸 강아지풀은 잡초가 아닌, 쓸모를 부여한 하나의 매개체로 자리 잡는다. 그는 잡초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강아지풀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고 개인적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한다. 그렇게 새롭게 정의된 명함으로, 일반적인 컨버스에 그림을 그리던 기존의 작업 방식과는 또 다른 작업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신영주 작가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인 흙으로 자신만의 오브제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오브제의 존재성을 ‘오파츠’로 명칭하고, 또 다른 상징성을 부여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유물의 상징적 의미를 부정하듯,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더한 새로운 유물을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토우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기존 유물에 쓰인 프레임을 벗어나려 한다. 유물은 현대인들의 시선에서 이름이 붙여지고, 용도가 추정되며 정의 내려진다. 그는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의 인식이 반영된 유물의 상징성을 깨뜨린다. 그는 새로운 존재의 유물에 스토리와 성격을 부여하고, 세계관을 확장해 나간다. 스스로를 ‘연구소장’이라 부르는 작가는 각각 다른 이야기가 깃든 토우들을 새롭게 재생산한다. 흙을 통해 생명력을 부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수호적인 존재인 장승, 그리고 도깨비, 토우를 통해 현실을 살아갈 힘을 만들어낸다. 기억의 지형 속에서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시간이 흐른 자국이 드러나 보이는 작업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한다. 이는 삶을 파고들어 또 다른 지형도를 만들고, 여러 개의 토우는 작가가 걸어갈 길의 방향을 따라 나아간다.

두 작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지형도는 거닐어온 삶의 발자취가 하나의 길로 이어지고 있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업에 기인한 개인적인 서사가 확장되어 표현되고 표출되어, 작품으로 승화된다. 두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한 ‘흙’이란 존재를 통해, 이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흙은 가장 원초적인 매체이자, 이 땅에 살아가는 것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우리가 살아갈 땅을 만들어준다. 우리가 단단한 땅을 딛고 서 있듯, 이들의 ‘내면’도 단단한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흙 속으로 뿌리가 뻗어나가며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며 점점 단단해지는 내면을 만들어 가는 것 같았다. 두 작가가 가진 내면의 힘을 들여다보며, 흙을 파고들어 점차 뻗어나가는 뿌리처럼 앞으로 어떤 지형도를 그려나갈지 궁금해졌다. 이들이 만들어갈 기억의 지형 속에서 각자가 나아가야 할 길 또한 찾아보길 바란다.

박보은

로컬 생산자. 디자인 스튜디오 ‘로크 스튜디오’ 운영.
부산에서 로컬 관련 기획 및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역에 대한 이야기와 연구를 기록하며 써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