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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상상을 그리는
연대의 온기로부터 동화작가 안미란

박소연 사진·영상유돈희

동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상상은 도피가 아닌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된다. 안미란 작가에게 동화란 이해와 존중의 언어가 교차하는 세계이자 여리지만 단단한 마음이 모여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기적이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즐거움을 나누는 순간, 상상을 그리는 연대의 온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안미란 작가님 안녕하세요. 1996년 등단 이후 오랜 시간 아동문학계에서 활동해 오셨는데요.
창작이나 사회적 활동을 하실 때 중요하게 여기시는 원칙이나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미란 안녕하세요, 동화작가 안미란입니다. 저는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가장 작고 약한 존재들의 목소리라고 믿어요. 예를 들어, 이솝 우화에서 그물에 걸린 사자를 구해주는 건 작은 생쥐예요. 또 다른 예로, 옛이야기 속 중국 사신이 던지는 난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왕이나 선비가 아니라 힘없는 소년이나 할머니죠.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위로와 희망의 매개체가 바로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들이 작고 약한 존재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용기를 북돋우며, 희망을 주는 선물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작품 속에 반영하시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공동체 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 공동체는 어떤 의미인가요?
미란 공동체를 생각할 때, 개개인이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맺거나 모두가 똑같아지려는 상태는 건강하지 않다고 봐요. 오히려 진정으로 건강한 공동체란 서로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예의’라는 표현이 다소 모호할 수 있지만, 생명체 간의 상호 존중과 배려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다양한 공생관계 속에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의 본질이자 비로소 균형 잡힌 사회라고 생각해요.
이주민 인권 단체인 ‘(사)이주민과 함께’에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당시 경험이 <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 등의 작품 구상이나 창작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미란 단체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왔는데, 보상이나 명예를 바라지 않고 평등과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더 나은 세상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됐고, 동시에 제 작품관도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이야기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그때의 깨달음이 작품에 스며들면서,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을 창작하시는 데 있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시는 방식과 그것을 작품으로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미란 요즘 자주 듣는 말 중에 “다정함은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창작도 비슷해요.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다정함을 베풀기 어려운 것처럼, 자료가 풍부하지 않으면 상상력도 빈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모으고 공부해요. 그렇게 구상을 마치면 등장인물들의 주요 캐릭터를 스케치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지만, 캐릭터의 얼굴을 제 방식으로 그리다 보면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저에게 창작이란 방대한 준비와 구체적인 실행의 반복 과정인 것 같아요.
동화란 어린이들에게 직접적인 교훈을 전달하기보다 어린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동화 창작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으신가요?
미란 세상의 변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는 어른들의 몫일 수 있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어린이들의 동심이 있어요. 동심은 단순한 순수함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며 타인을 친구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에요. <내겐 소리로 인사해 줘>에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린이들이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투명한 아이>에는 친구들이 상상 놀이를 통해 미등록 이주 아동인 ‘눈’에게 ‘우주 시민증’이라는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비록 놀이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불공평한 현실을 상상력으로 뒤집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동심에서 비롯된 연대와 공존의 감각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동심을 작품 속에 녹여낼 뿐이에요.
작품 속에서 어린이들이 겪는 문제나 갈등을 다룰 때 현실적인 문제와 상상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롭게 표현하시나요?
미란 동화에서 상상력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만드는 힘으로 작용해요. 저는 작품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기반으로 하되, 상상의 요소를 통해 어린이들이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예상치 못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특히 작품의 초점이 지나치게 논리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어린이들이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끼고 상상력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품 활동 이외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이나 글쓰기 프로그램, 작가와의 만남 등 독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는데 그 이유가 있으실까요?
미란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일을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독자와의 만남 자체가 제게는 소중한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 같아요. 한 번은 어린이 독자 중 한 명이 “동화작가는 왜 존재하나요? 돈도 안 되고, 물건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요?”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어요. 순간 당황했지만, “동화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외롭고, 춥고, 견디기 힘들 거예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잊고 지내던 어린 날의 제가 떠오르면서, 동화가 꿈과 희망을 전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평소 생각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갖게 된 순간이었죠. 독자와의 소통은 창작자로서 성장하고 영감을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 나갈 계획입니다.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장르로 인식되지만 때로는 어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곤 합니다.
독자들이 동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어가기를 원하시나요?
미란 작품에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고민하지만, 사실 특정한 교훈을 전달하기보다는 독자들이 작품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웃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화는 유아부터 어린이, 청소년, 어른, 노년 세대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장르예요.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책을 중심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매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동화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죠. 제가 바라는 건 독자들이 동화를 읽으면서 메시지를 받는 것을 넘어, 각자의 경험과 삶의 문맥 속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동화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선과 깊은 울림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부산에서 국내 최초로 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립니다. 이번 행사가 작가님께 그리고 국내외 아동문학 시장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미란 최근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이하 IBBY) ‘아너리스트’ 후보로 선정되어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IBBY 세계총회에 참석했어요. 그곳에서 전 세계의 작가, 편집자, 독서문화활동가들과 교류하며 많은 점을 배웠지만, 동시에 국내 아동문학이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산 국제아동도서전의 개최는 국내 아동문학의 글로벌 도약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해요. 국내 작가들에게는 국제적인 무대에서 스스로를 알릴 기회를 제공하고, 해외 관계자들에게는 한국 아동문학의 매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요.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 아동문학이 많은 독자에게 알려지고, 문화적 교류와 영감의 원천이 되어 한국 아동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더욱 확고한 자리를 다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번에 부산문화재단에서 새롭게 시행하는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올해의 포커스온–문학> 분야에도 선정되셨다고 들었어요.
미란 IBBY 세계총회에 참석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점은 제 작품이 영어권으로 번역되지 않았고, 영문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어요. 해외시장과 접촉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죠. 올해 초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작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부산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인 <올해의 포커스온–문학> 공모를 알게 되었고, 사업에 선정되면서 ‘영문 홈페이지 개설’, ‘리플렛 제작’ 등 그동안 계획했던 일들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사업은 제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제시할 중요한 기회예요. 첫 사업 참여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른 작가들과도 유익한 정보를 나누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미란 어린이 독자들은 작가의 이름보다 책 속의 주인공을 오래 기억해요. 그래서 제 책을 읽은 어린이가 작품 속 주인공과 함께 자라고, 그 주인공이 언젠가 그들의 손자나 손녀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어쩌면 제 꿈은 조금 거창하고, 말로 표현하기에 부끄러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제 작품 속 주인공들이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가 꿈꾸는 바를 이룬 셈일 겁니다. 제 작품이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힘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안미란

동화작가. 시대적 과제를 따뜻한 연대의 시선으로 풀어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2024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 아너리스트 한국 후보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