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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미로에서 길을 찾다

이주영

2024 BPAM 조인 <그루-업>

내 인생에서 2024년 여름만큼 더울 때가 언제 있었을까?
2024년 여름을 떠올리면 성인발달장애인 직업훈련반 훈련생들과 함께 훈련실에서 더위와 힘든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럼에도 <그루-업>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이들과 온그루홀에서 ‘나를 알아가는 길’을 땀과 열정을 담아 몸으로 체득했던 순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6월 말 즈음 직업훈련반 훈련생 대상 장애 예술 활동으로 무용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 댄스 프로그램을 이미 하고 있는데 중복되지는 않는 건가?’, ‘훈련생 기능향상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약간의 우려를 품고 첫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대체적으로 다른 외부 신체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강사님의 진행 방향에 맞추어 정해진 활동 및 동작을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번 <그루-업> 무용 교육은 큰 틀 안에서 훈련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호응하며 온 마음을 다해 박수를 쳐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 되면서, 훈련생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 모두’의 프로그램 활동이 되었다.
훈련생들이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음악에 맞춰 표현하고,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언어’라는 매개체 대신 ‘몸’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해서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잘하고 못함’의 구분 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시간이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훈련생들이 똑같은 동작을 ‘제대로’, ‘잘’ 수행하지 못할 때마다 마음이 쓰였던 나는, 1:1 개별지도만 하던 담당자에서 종국에는 어떤 동작을 하든 ‘나답게’, ‘당당하게’ 표현만 할 수 있다면 훈련생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담당자가 되며 큰 변화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이번 활동이, 사회의 벽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의 한계를 정해버렸던 스스로에 대해 반문하는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복지관 훈련생 중에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 지윤(가명)이라는 친구가 있다. 지윤이는 복지관 선생님과 부모님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좋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은데, 왜 복지관 선생님과 엄마, 아빠는 내가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못 만나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단독 행동을 했고, 그로 인해 혼이 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런 지윤이가 <그루-업> 프로그램을 통해 선생님들로부터 “어머, 지윤아, 너 정말 무용에 재능이 있구나!”,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라는 칭찬을 받게 되었고, 이후 내게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전해왔다. 왜 감동적이었다는 표현을 하게 되었냐고 물으니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줘서요. 선생님들께는 저의 귀여운 모습, 짜증내는 모습, 생각하는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어요.”라고 방긋방긋 웃으며 말해왔다. 그러면서 당당한 어투로 “저 이제 장애 예술가예요!”라는 말을 어찌나 자랑스럽게 하던지, 직업훈련반 담당 사회복지사로서 여기저기 헤매던 미로에서 또 다른 출구를 찾은 기쁨을 느꼈다.

지윤이가 장애 예술 활동 영역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그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지윤이는 공연 연습하러 가는 길에도 놀러 가고 싶은 곳으로 이탈해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걱정시켰다. 하지만 결국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폭우를 뚫고 비에 홀딱 젖어 다시 연습 장소로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기특하던지.
모든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참여한 훈련생들의 보호자들이 모인 간담회 자리에서 지윤이 어머님이 “저는 모임에서 사람들이 한턱 낼 때 얻어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그루업 프로젝트 공연 이후에는 제가 우리 지윤이 일로 기분 좋게 한 턱 쐈어요.”라고 말씀하실 때 다른 보호자분들과 함께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늘 발달장애인의 부모라는 이유로 어디에 가든 양해를 구하고 미안하다는 소리를 반복해야만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당당하게 ‘나’를 알리는 무대에 선 자식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윤이뿐만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모든 장애인과 함께, 비록 다소 느리더라도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길을 함께 찾아 걸어가고 싶다.

이주영

동래구장애인복지관 직업재활반에서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화를 위해 직업 적응과 역량개발 훈련을 함께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