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3.보도블록 틈 사이
보도블록 위 물방울 모양을 한쪽 방향으로 길게 당겨 얇고 길쭉한 물방물 모양을 띤 강아지풀을 관찰했다. 얇고 센 털들이 빼곡하게 자라 만졌을 때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그 옆엔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 인사하고 있는 강아지풀이 있었다.
보도블록에 누워 위로 자라나는 대신 옆으로 강차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주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라날 수 있는 방향을 찾은 것이다. 나 또한 나의 방향속도를 찾아 창의적으로, 독창적으로 나아가도 괜찮겠다.
2024.08.17.버스정류장 옆 화단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길을 걸었다. 횡재다. 버스정류장 옆 사군자 난의 곡선처럼 기막힌 비율의 강아지풀을 발견했다. 동글동글한 연두 빛깔을 띤 아직 머리가 덜 자란 듯 귀엽게 핀 아이 옆 흰 수염처럼 나 있는 할아버지 강아지풀 밑에 청록 빛깔을 띠고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 푸릇한 강아지풀이 조화롭게 피어 있었다. 아동기에서 노년기를 지나고 있는 과정들이 한데 모여 공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강아지풀을 보고 있으면 “왜 잡초로 취급받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정말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태도에서 모든 건 달리 보인다.
2024.09.07.놀이터 주변 아스팔트
청초한 초록을 품고 있는 강아지풀 한 줄기가 아스팔트 틈 사이로 자라나 있었다. 사방에는 쓰레기들이 뒤얽혀 자라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줄기가 휘거나 구부러지지 않고 당당히 자라나 있었다. 주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위로 뻗은 모습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5개의 잎이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듯 교차하고 있었다. 잎들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끝이 반듯하게 잘려있었다. 이렇게 굳건하게 잘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뿌리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 외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뿌리는 나에게 지도와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강아지풀들의 뿌리가 모여 지형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나 자신도 나만의 뿌리 지도를 만들어 가야겠음을 다짐한다. 다양한 현실 체험을 통해 연결되고 단절되기도 하며 조화되고 충돌하는 흔적들이 쌓여 나만의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2024.10.05.횡단보도 옆 보도블록
무더운 여름이 한풀 꺾이고 살짝 차면서도 뜨듯한 공기가 섞인 가을바람이 강아지풀을 살랑이고 있었다. 보도블록 틈 사이 노르스름하게 익은 강아지풀 한 무리가 있었다. 강아지풀 이삭이 한올지게 잘 익어 패딩을 입은 듯 빵빵했다. 추수의 계절을 알리는 듯했다. 이렇게 한자리에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꼭 터줏대감 같았다. 푸릇푸릇했던 조그마한 강아지풀이 시간이 지나 노르스름하게 익어갈 수 있는 이유는 보도블록 밑 단단하게 뻗어있는 뿌리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2024.10.08.비탈길 아스팔트 위
아스팔트 위 강아지풀이 낙엽이 되어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 붉은 갈색빛을 띤 아스팔트 위 황갈색의 강아지풀은 익고 있는 고추들 사이에 같이 말려지고 있는 모습 같았다. 가는 가지들은 각진 직선에서 시작해 꽃으로 갈수록 곡선의 모습으로 끝나 있었다. 처량한 듯 자유로워 보였다. 길가에 피어 있는 강아지풀을 보다 보면 똑같은 형태의 강아지풀이 없다는 걸 느낀다. 하나의 이름 아래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 것 같다. 나 또한 하나의 몸 안에 다양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운 일이다.
2024.10.12.헌옷수거함 밑
헌옷수거함 밑 틈에서 작게 피어나 있는 강아지풀을 보았다. 헌옷수거함 속 공간은 쓰임이 끝나 또 다른 쓸모를 가지는 시작의 장소로 보였다. 각자에게 맞는 쓸모 있는 옷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쓸모없는 것은 없다. 과거의 흔적들도 지금의 가치에는 쓸모가 있다. 잠시 그 쓸모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쓸모가 없어진 헌옷수거함 속 옷과 강아지풀도 쓸모를 아직 못 찾았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