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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공간

권달술의 그때 그 시절 나의 작품 이야기

권달술

나는 조각을 한다.
내 작품들은 대개 유연하게 왜곡된 육면체의 외곽선들이 공간을 가득 품고 있는 그런 것들이다.
또, 그 재료는 작품들에 따라 대리석이나 화강암 같은 석재도 있지만 대개는 브론즈나 스테인리스 혹은 철 등 주물로 된 금속들이다.

나의 작품들은 부산 어린이대공원을 비롯한 시내 곳곳과 양산의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고, 양산에 있는 ‘권달술의 조각마당’에는 야외 전시의 형태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더러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우리 모두는 너무나 가난했었다.
나는 전쟁 무렵인 1950년에 초등학교엘 들어갔었다.
새 연필을 살 형편은 못되었기에 집에 있던 유일한 몽당연필의 새 주인이 된 나는 종이 쪼가리만 보이면 뭐든지 그리곤 했다.
어느 날 부잣집 아이 하나가 새 대자(대나무 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공책에 이런저런 직선을 멋지게 그려 보이며 폼을 잡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까지 그런 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그려내는 똑바른 직선들이 너무 멋있고 신기해서 내심 부러웠다.
나는 당장에 과감하게 그러나 조용하게 공책을 한 장 찢어 접고 접어 그 대자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고는 그 아이의 흉내를 내듯 4각형도 그리고 6각형도 그려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럴듯해 보였지만 자꾸 그릴수록 중간에 꾸불거리는 부분이 생기곤 했다. 그래도 나는 여러 모양들을 신명나게 그리곤 했다. 그런데 나의 그 종이 자는 얼마 가지 않아 종이의 연약함 때문에 구불거리기 일쑤였다.

새로운 작업을 모색하던 2007년 어느 날, 우연히 50년도 훨씬 이전의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때 내 불만이었던 그 꾸불거리던 선들이 인간적인 그리움으로 다가오면서 갑자기 그 기억과 결부된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어졌다.
곧바로 그때 종이 자로 그렸던 여러 모양들을 떠올리며 주변의 종이들에 볼펜으로 스케치를 하고, 여러 갈래로 조형적 가능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듯 오갔다.
어떻게 기하학적인 이미지밖에 없는 육면체의 선들을 인간미가 꿈틀거리는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또 세련된 현대적 감각과 작품성 그리고 품격도 함께 발현되게 해야 하는데...

일단 시작(試作)을 만들어 봐야 했다.
처음엔 철사와 점토로 형태를 만들어 보다가 이리저리 기법과 재료를 바꾸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실험 재료로 포맥스(formax, 석유화학 제품으로 열에 약한 간판 재료)를 발견하면서 가능성은 대박이 되었다. 간판 재료상에서 구할 수 있는 포맥스는 베니어판 같이 각종 두께로 된 흰색 판의 형태인데, 비싸지만 두꺼운 것은 3cm 정도인 것도 있었다.
표면의 딱딱함과는 달리 커터 칼로도 잘 잘라지는 재료의 특성상 두께만큼의 너비로 선을 긋고 커터 칼로 잘라 정사각기둥 모양의 작대기를 여럿 만들었다. 그 후 이들을 다시 잘라 접착제로 정육면체의 모양을 만든 뒤, 접착 부분이 단단해지면 온풍기의 뜨거운 바람을 이용해 직선의 선들을 구부리거나 이리저리 비틀어 내가 생각한 작품적 요소들을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조각 작품은 보통 흙이나 석고 아니면 가변성 있는 재료들로 원작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이를 목재나 석재 혹은 금속주물의 과정을 거쳐 영구 작품화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목재나 석재로 영구화 작업에 들어가는 작품들은 원작 본래의 크기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비례자를 이용해서 줄이거나 키워 현실화할 수 있다. 하지만 금속주물의 경우는 원작을 가지고 본을 뜬 뒤, 그 본 속에 쇳물을 붓는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원작 그대로의 크기로밖엔 현실화가 안 된다.
나의 작품들은 거의 금속 작품들이고 브론즈나 스테인리스 주물 작품이 많은 편인데, 대개는 1차의 포맥스 원작이 아니라 크기에 따라 재료도 달라진 실물 크기의 2차 원작으로 주물공장에 의뢰한다. 이때 주물공장에서는 여러 주물과정에서의 유의점과 표면처리까지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숙지한 뒤에 주물공정에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주물공정이 완전히 끝나면 마침내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2010년 부산 어린이대공원에 건립한 상징조형물 <확장하는 꿈>

권달술

신라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제25대 부산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내고 현재는 (사)한국미술협회, (사)부산미술협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문공부장관상 및 특선을 수상했으며 국내외 380여 회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