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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

자갈치

윤보성

세상의 모든 물고기들이 씨가 마른다면 말입니다 관광객들이 이 시장 저 시장을 뛰어다니며 달러화 유로화 엔화 위안화를 호객행위 하듯 흔들며 최후의 건어물을 차지하려 아귀다툼한다면 참 볼만하지 않겠어요? 브레인 포그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투쟁도피반응에 몰입해야 합니다 부득불 당신의 스트레스를 신뢰하세요 군중 속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할 방법은 없어요 그저 모두를 사랑하거나 모두를 미워할 수밖에요 그때 나는 자갈치의 명물 서정다방에서 친구들과 친구들의 친구들을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질 않아 수현과 함께 거국적으로 술이나 마시러 갔죠 한밤의 포장마차에 걸터앉아 고갈비와 C1소주를 먹고 마시며 전 애인과 애인의 애인들을 추억하며 대화하고 있었어요 옆자리에 있던 관광객의 인공지능 번역기가 애살 있는 목소리로 멸종된 문어 숙회의 암시장 가격을 물어보다 갑자기 우리에게 사변적인 쌉소리를 지껄이지 않겠어요? 현실을 드라마처럼 꾸며야 합니다 새파랗게 질린 세트장 한가운데에서 실시간으로 밈화된 선동구호를 복제당한 동일인물에 부여하는 겁니다 어디에도 팔지 않는 생존키트에 새겨진 바코드처럼 우아하게 말이죠 이곳엔 마가 꼈거든요! 영화의 도시는 다 옛말이라니까요? 이제 이곳을 영락의 도시라 부르는 게 어떠신가요? 듣자 하니 우릴 아주 잘 안다는 듯 이야기하길래 뭐라 한마디 하려는데 옆을 보니 아무도 없지 않겠어요? 우린 굴하지 않고 술잔을 부딪히곤 장광설을 이어갔죠 어쩌면 짜잔! "무한생명연장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우린 지금처럼 한량일 테지만 뭐 우짭니꺼? 아니 어차피 20년? 30년? 안에 일자리란 일자리는 다 사라질 거고 생업은 폐업할 텐데 고마 그땐 오늘의 고민 따윈 부질없지 싶은데 마 안 그렇겠어예? 해무에 휩싸인 영도대교를 향해 하늘에서 유령선의 닻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새벽이 밝아오자 골목길에서 쓰러져 자던 뱃사람들은 선지국밥집으로 들어가는군요 우리는 취하다 만 채 스근하게 바다를 보러 가고요 대왕고래 무리가 유성우처럼 상공을 뒤덮고 있어요 아름답네요 죽은 아빠와 술 한잔 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워요

윤보성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17년 시인수첩을 통해 등단, 2022년 시집 『망현실주의 선언』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