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박보은
나의 음악 감상은 미키마우스 MP3로 시작한다. 다운로드한 노래들을 MP3에 담아 듣던 그때 그 시절. 지금은 휴대전화와 선 없는 이어폰으로 듣고 싶은 노래를 바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2030세대에서 시작된 아날로그 열풍으로 과거의 모습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어울리지 않은 조합처럼 보이지만 Y2K 패션01부터 그랜파코어룩02까지. 시대가 역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2030세대들은 LP바로 발걸음을 옮긴다. 실리카겔, 너드커넥션, 루시 등 LP바에서 듣는 요즘 노래들. 지금 우리 청춘에게 밴드가 있다면, 그때 그 시절에는 쎄시봉이 있었다.
쎄시봉, 한국 최초 음악감상실. 음악감상실 문화는 부산도 빨랐다. 잠시 피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전 세계의 UN군 병사들이 모여들며 재즈, 팝송 등 다양한 서구 문화가 들어왔다. 일본, 대만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여러 음악을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또한 부산항을 통해 여러 물자부터 밀수품들이 밀려 들어왔다. 이러한 환경 덕에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부산의 레코드 산업은 어느 지역보다 활발했다.
다가온 7080시대. 다방 문화부터 시작하여 1970-1980년대의 남포동은 문화 예술 공간이 가득했고, 그 중심에는 음악감상실 ‘무아’가 있었다. 광복동 입구의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5층 건물 중 4층에 위치했으며, 청춘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던 공간이었다. 극장처럼 앞쪽 무대 방향으로 1인용 소파가 배치되었고, 뒤편에는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DJ 박스가 있었다. ‘무아’는 최신 음반, 빌보드 차트 등 최고급 음향 기기를 통해 최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음악감상실 입구에서 요구르트 혹은 코카콜라 값을 지불하고 음료를 챙겨 실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약 200평의 큰 공간에는 280석의 좌석이 있었고, 소파에 앉아 담배와 대화 없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해야 했다. 이후,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시간대별로 DJ가 번갈아 가며 음악을 틀며 시 낭송, 디스코, 악기 연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항구도시 부산은 팝 음악 수입이 빨랐고, 외국 선원들을 통해 외국 최신 음반을 사들여 ‘무아’에선 누구보다 빠르게 최신 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입소문을 타고 서울로 전파되었다. 부산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음악 트렌드를 이끌었다. 누구나 전성기가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엔 기억하고 싶은, 기록하고 싶은 지나간 추억이 된다. 젊음의 표상이던 문화공간인 음악감상실은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TV와 음향 기기의 보급으로 사라진 공간이 되었다. ‘무아’는 남포동에서의 영업을 종료하고 부산대로 이전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현재 ‘무아’가 사라진 공간에는 원더플레이스라는 대형 옷 가게가 자리 잡았지만, 누군가는 남포동에서 ‘무아’의 추억을 회상하며 또 다른 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무아’의 흔적을 쫓기로 했다. ‘무아’ 이후 남포동에는 ‘꼬맹이 무아’와 ‘음악에’가 생겼다는 기록을 기사03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남포동 뒤편 국제시장에서 시작된 가게 찾기의 여정은 ‘꼬맹이 무아’에서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꼬맹이 무아’는 지도에서 검색이 된 덕에 디지털 힘을 빌려 쉽게 찾았지만, 문을 닫은 이후였다. 사거리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가게는 2층에 자리 잡고 있었고, 건물 외벽 간판도 그대로였다. 올라가는 계단의 ‘Chet Baker’ 벽화와 입구 유리문에 붙어있는 ‘좋은 音樂이 있는 곳’, ‘꼬맹이 무아’ 시트지와 김현석의 앨범 재킷 포스터도 볼 수 있었지만, 유리창 넘어 공간은 공허하게 텅 비어있었다. ‘꼬맹이 무아’의 껍데기만 남은 공간은 ‘음악에’를 더욱 찾고 싶게 만들었다. ‘음악에’는 지도에 주소가 뜨지 않아,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에서 위치를 찾았다. 위치는 ‘오겡끼카레’ 위층으로 구제 골목 중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이진 않았고, 누군가 찍어 올린 가게 사진에서 찾은 연락처를 통해 사장님과 연락이 닿게 되었다. 지금도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어둑한 밤 ‘음악에’를 다시 방문했다. 거리엔 ‘음악에’를 안내하는 큰 표지판은 없지만, 저녁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파란 간판이 눈에 띈다. 간판을 따라 도착한 건물이지만 ‘음악에’에 가기 위해선 굉장히 가파른 계단을 3층까지 올라야 했다. 굵은 밧줄을 잡고 올라간 후, 입구 문을 열면 눈앞에 작은 DJ 공간이 등장한다.
뒤편으론 수많은 LP와 CD 그리고 스피커가 반긴다.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옛 뮤지션들이 나오는 TV와 무대 그리고 기타가 자리하고 있다. 가게에서 들리는 Carpenters의 ‘TOP OF THE WORLD’ 노래는 1970년대의 음악감상실에 들어온 느낌을 주었다. 공간을 둘러보며 ‘무아’와 ‘음악에’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는지 물었고, 차 한 잔을 내주시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무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정병호 님은 2001년 1월 9일, 국제시장의 한 건물에 ‘음악에’ 공간을 열었다. 그가 처음 음악을 배우게 된 곳은 남포동이었고,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미화당 백화점 옥상 휴게실04에서 음악을 틀며 음악을 알아갔다. 어릴 적부터 용두산 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무아’가 사라진 이후, 남포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2001년 문을 연 ‘음악에’는 운영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음악에 빠져 살아온 그의 모습이 담긴 공간은 옛 명곡들로 채워진다. 그는 ‘무아’를 떠올리며 ‘판돌이05’로 시작한 음악 인생을 이야기해 주었다. 또한 DJ로 데뷔하기 전, ‘무아’에서 근무하며 천장 형광등을 빨강, 파랑, 노랑 셀로판지로 감싸 직접 색 조명을 만들기도 했으며, 커피 머신이 고장 나면 거뜬히 고치기도 하는 등 공간을 정성스레 관리했다. 그는 음악도 사랑하지만, 공간을 가꾸는 일 또한 즐거웠다고 한다.
그는 ‘무아’ 시절 기억을 되살려 가정집이었던 이 공간을 직접 꾸며나가고 있다.
그는 ‘무아’에서의 시간을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표현한다. ‘무아’에 근무하게 되어서 음악에 빠져 살 수 있었다고. 그는 ‘무아’에서 그리고 ‘무아’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러 장소에서 DJ를 하며 음악을 놓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준비했다. 음악과 함께 했던 전성기를 떠올리며, 음악에 빠져 살아온 인생을 ‘음악에’ 공간에 담았다. 그는 몸과 정신이 허락하는 이상, 앞으로도 공간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록 처음에는 혼자 공간을 꾸렸지만, 손님들이 가져다준 CD와 LP로 음악을 쌓고 있다. 끝으로 나의 신청곡,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를 들으며 공간을 나섰다.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앞으로의 삶에 어떤 일이 생길진 모르지만. 내일이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갈 나날들을 기대하며, 음악이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보았다.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원하는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 여행 스케치의 ‘산다는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 中 -
박보은
로컬 생산자. 디자인 스튜디오 ‘로크 스튜디오’ 운영.
부산에서 로컬 관련 기획 및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역에 대한 이야기와 연구를 기록하며 써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