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 이거 잘 그렸지!”
“..... 그래, 근데 지금 니가 그림 배워서
나중에 뭐, 화가로 돈 벌끼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것들
위 대화는 내가 어느 주말에 취미미술 수업을 막 듣고 나서, 할머니를 뵈러 간 김에 자랑스럽게 꺼낸 그림을 앞에 두고 얘기 나눈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께서는 그림 같은 거 말고 차라리 영어나 회사 다닐 때 필요한 걸 배워보라는 충언도 곁들이셨다.
수많은 취미 생활 중 나는 왜 미술이었을까? 그 시작은 나의 직업의 변화에서부터였다. 프리랜서로 지낼 때는 불규칙한 생활로 가벼운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니 나름의 경제적인 안정감을 얻어 매달 나가는 회비를 부담할 만했다. 하지만 그런 평화도 잠시, 회사에서 아무 영혼 없이 여덟아홉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온전히 나로 누릴 수 있는 나의 시간이라고는 고작 퇴근하고 나서의 몇 시간이었고, 그마저도 저녁밥 차려 먹을 체력도 안 되어서 허구한 날 배달 앱을 열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찾게 된 취미미술. 지난날에 일일 수업으로 들어봤던 경험과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없다는 콤플렉스가 더해져 수업을 찾게 되었다.
처음 간 수업시간에 연필로 선 긋기를 하는데 그 일이 너무 즐거웠다. 근래에 한 일 중에서 가장 무용(無用)한 것이었는데, 이 ‘쓸모없음’이 주는 기쁨이 컸다.
그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긴 선을 반복해서 그리는 일을 하면서도 ‘잘’하려고 하는 내 모습에 대한 알아차림 등은 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했다. 그림을 그리러 가면 내 영혼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회사 생활을 하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친구와도 함께 그리면서 그림에서나 인생에서나 틀린 것 없이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배웠고, 일상에 활기를 더했다.
예술 아닌 것은 무엇인가
사실, 할머니께서는 모르시지만 나는 이외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많이 하고 있다. 어느 주말이면 집 근처 카페에 들러 창밖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계획도 없이 무작정 걷기도 한다. 꽃 피는 계절에는 꽃내음을 맡으러 나들이도 가고, 햇살 좋은 여름날이면 바다 수영도 즐긴다. 또한, 지난 애인이 그리운 어느 새벽에는 그가 좋아하던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그걸로도 안되면 시를 읊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일상은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눈 감을 때까지 예술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면서 나를 새로이 알아가는 일이 예술이고, 나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할머니를 미워하지 않고 이해해보려는 것도 내게는 그저 예술이다. 내 곁에는 수많은 예술이 있고, 나는 이를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 그저 나를 미지의 세계로 내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를 뿐이다.
요즘 내가 머물고 있는 미지의 세계는 바로 춤이다. 그중에서도 쿠바 음악과 라틴아메리카 음악을 혼합한 음악에 맞춰서 추는 ‘살사(Salsa)’에 빠져있다.
10년 만에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서 나와 살사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맛보기로 참여한 첫 수업 때, 음악에 맞춰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고 ‘아, 나도 저 사람들처럼 춤을 추고 싶다’하는 동경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춤을 시작하게 되어 올해로 3년 차를 맞았다. 나는 평생을 내가 몸치라고 생각해와서 춤과 가까워질 수 있으리란 상상을 못 했었는데, 이렇게나 오래 함께하게 될 줄 몰랐다.
나는 살사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 때, 뭔가 모를 ‘해방감’을 느낀다. ‘나’를 잊고 그저 본능에 귀를 기울이는 감각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나는 더더욱 ‘글’과 ‘말’에 익숙한 삶이었기 때문에 ‘몸’을 쓰는 일이 무척 낯설었다. 몸의 움직임을 작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안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발견해가는 여정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고, 유일무이하다.
내 안의 나를 찾아서
니체가 “음악 없는 삶은 오류에 불과하다”라고 한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나는 다양한 음악과 그 위에 얹어지는 다양한 춤을 통해서 나의 온전한 존재에 대해서 느낀다. 그렇게 넓어진 나의 세계에는 혐오가 없고, 집착이 없으며, 한계가 없다.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의 세계다.
내가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나의 할머니와 함께 햇살 가득한 봄날에 드로잉을 하고, 할머니께서 좋아하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몸을 신나게 흔드는 것, 그리고 이를 오래오래 함께 하는 것만을 바란다.
이하니
#자유 #사랑 #알아차림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일을 즐겨하는 사람, 그럼으로써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을 지상 최대의 낙(樂)으로 여긴다. ‘나는 무엇까지 될 수 있을까?’가 여전히, 제일, 궁금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