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영 작가에게 감각은 곧 연결이다. 눈, 귀 같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기관들이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서로 끝없이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의미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을 ‘눈’으로 보고 있지만, 문득 어떤 소리가 들리거나 촉감이 닿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그런 이유일 터다.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정만영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융합이다. 그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융합을 구현하고 있을까?
작가님께서는 오랜 시간 지역을 대표하는 ‘사운드 설치미술가’로 활약해오셨어요.
사운드 설치미술이란 어떤 장르로 이해하면 될까요?
만영
설치미술인데 사운드(소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예술 장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쉬울까요? 저는 사운드를 활용해서 설치미술 작품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제 작품은 시각과 청각 두 가지 감각을 믹스해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작업에 들어갈 때 항상 이 두 가지 감각이 만나는 지점을 어떤 형태로 구현할지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흔히 공감각이라고 하는데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잖아요. 빨강이나 노랑 같은 색깔을 보면서 따뜻함이라는 촉감을 느끼는 것처럼요.
제 작품도 여러 감각을 함께 사용해서 완성되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도 눈으로만, 귀로만 감상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감각을 총동원해서 봐주셨으면 해요.
작품 제작과정이 궁금합니다.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며 소리를 수집하는 과정, 이른바 ‘필드 레코딩’이 첫 단계라고요?
만영
네. 주로 자연에서 소리를 수집하는데요,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들 위주로 찾아다닙니다. 순천만습지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야외에서 소리를 녹음할 때가 많아서 날씨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센 날은 특수장치(윈드실드)를 꼭 챙기죠. 그러면 바람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필요한 소리만 깨끗하게 담을 수 있거든요.
본격적인 작품 구상은 채집한 소리를 정리한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채집한 소리를 어떻게 시각적인 부분과 연결시킬지가 관건이죠. 이 부분이 해결되면 시각적으로 선보일 오브제 제작에 착수합니다. 사이즈가 클 때는 외부 도움을 받지만 그렇지 않을 땐 제가 직접 제작해요. 저기 쇠 깎는 기계, 3D 프린터 보이시죠?
아, 채집한 소리는 편집해서 사용해요. 불필요한 부분은 자르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주파수를 조절해서 높이는 식으로 강약을 조절하는 거죠. 충분한 설명이 됐나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자연의 소리를 수집한다니 무척 흥미롭게 느껴져요. 재밌을 것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 작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만영
전체 제작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원하는 소리를 담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거든요. 우선 낮엔 거리가 북적이잖아요. 차도 쌩쌩 달리고, 사람들의 생활소음도 많으니까 필요한 소리를 채집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주로 늦은 밤 혹은 새벽까지 대기합니다. 보통 한 장소에 마이크를 두고 오랜 시간 숨죽인 듯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혼자 다니는 편인데요, 여기도 함정이 있는 것이 주변에 사람이 있거나 하면 또 녹음에 어려움이 생겨요. 실제로 예전에 철새, 풀벌레 소리를 담아보려고 늦은 밤까지 우포늪에서 대기하던 때가 있었는데, 갑자기 밤하늘 별을 찍으러 온 분들이 대거 몰려와서 작업에 애를 먹었던 적이 있거든요. 야외에서 작업할 때는 제가 임의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 이런저런 헤프닝이 많아요. 대신 재미있는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북 부안에 있는 채석강 쪽으로 소리 채집을 나갔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어디선가 자꾸 따닥따닥 소리가 나는 거예요. 고개를 기웃거리며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바위에 붙은 따개비들이 숨 쉬며 내는 소리였어요. 특이하지 않나요? 따개비가 내는 소리라니 예상치 못했던 발견이라 더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이 지금과 같은 작품세계를 확립하는 데에 일본 유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어요.
당시 ‘선단미술’을 접하게 되면서 매체 중심의 실험적 작품활동을 본격화하셨다고요. 선단미술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만영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어내는 걸 말해요. 음악, 무용, 미술 같은 여러 장르의 예술을 융합해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거죠. 1960년대에 처음 등장한 개념입니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유명한 고(故) 백남준 선생님도 이 개념에 속하는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플럭서스 운동(Fluxus)의 대표주자 중 한 분이잖아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서 예술의 정의와 표현 범위를 확대시키셨죠. 당시 비평가들도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을 두고 어떤 장르라고 정의하기 어려워했다고 해요. 어떤 장르에도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선단미술이 영어로 ‘Intermedia art’거든요. 마찬가지로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에 있는 개념이라는 의미로 접두사 Inter를 붙인 거죠. 이런 흐름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유학시절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장르를 허문 예술 분야인 만큼 다양한 분들을 만나셨을 것 같아요.
만영
제가 Intermedia art 학과를 다녔는데요, 교수님들부터 정말 다양했죠. 연극, 무용, 평론, 조각 등 여러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이셨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작곡가로 활동하시던 교수님의 연구실에 있었는데요, 그 연구실에 있던 사람들의 구성도 참 독특했어요. 미술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연극, 무용, 연주자 심지어 게임 프로그래머도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갈 함께 만드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 됐고요. 인상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폭포를 그린 작품을 보고 마치 실제로 폭포를 마주한 듯 그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경험을 한 거죠. 이런 여러 가지 경험이 바탕이 되어 비로소 지금의 제 작품활동의 배경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간 비엔날레나 팀 프로젝트, 개인전 등을 통해 많은 작품을 보여주셨잖아요. 음반 발매를 하신 적도 있고요. 그중에서 특별히 애정이 많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만영
2014년쯤 지리산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당시 참여작가들의 작품이 성당, 사찰 같은 종교시설에 전시됐었는데요, 제 작품은 남원에 있는 ‘실상사’라는 사찰에 전시됐었어요. 그때 제가 내놓은 작품 중에 비닐하우스 안에서 녹음한 소리가 있어요. 녹음기를 들고 녹음을 하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비를 피하려고 급히 비닐하우스로 뛰어든 날이 있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비를 피하려고 비닐하우스로 안으로 들어왔는데, 비닐하우스 안은 비가 소리가 되어(소리비) 내리고 있다는. 비는 안 맞았지만 그 소리가 제 피부를 적시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때 느낀 감정은 말로 다 못해요. 어떤 소리인지 궁금하시죠? 제가 정식으로 발매한 앨범 <소리비 실상사 사운드 스케이프>를 통해 들어보실 수 있어요. 7번 트랙(비를 피해 비닐 하우스로, 그리고 소리비)입니다.
어떤 소리인지 궁금한데 앨범이 전부 품절이네요? 재판매해주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하하). 최근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제가 듣기로 요즘 GPS 기술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거든요.
만영
자연에서 얻은 데이터값을 이용한 사운드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때 GPS 기술을 활용하죠.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사실 자연에는 많은 소리가 내재되어있거든요. 그 소리를 뽑아서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참여했던 <절영로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볼게요. 지금의 영도 지형이 만들어지기까지 바다와 육지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상호작용이 있었을 거잖아요. 그 경계에 많은 소리가 담겨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 소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상호작용이 일어났을 장소의 숫자로 표현되는 위치 데이터(GPS 데이터)를 수집해보기로 했죠. 직접 해안가를 답사하며 데이터 값을 찾고, 길이 끊겼을 때는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어 해안 라인의 정확한 GPS 값을 찾기도 했어요. 그 값을 토대로 컴퓨터 사운드 프로그램, 미디 프로그램 등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든 거죠. 요즘도 자주 바깥을 돌아다니곤 하는데요, 작년엔 주로 서해안 쪽을 찾아다녔고 최근엔 여수에도 다녀왔네요.
작품활동 외에도 다양하게 활동하시잖아요. 무대미술을 하신 적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고 계시다고요.
만영
제가 설치미술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무대공간을 꾸미는 일도 했던 적이 있었죠. 무용이나 연극, 국제행사 무대까지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아이들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써요. 부산문화재단, 국립부산과학관이 함께 하는 교육사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어요. 예술과 과학이 융합되면 어떤 형태가 나올까, 그런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거였죠. 아까 데이터값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드렸죠? 그것도 아이들 교육에도 활용하고 있어요. 작업실 야외에 날씨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거든요. 풍향, 풍속, 온도 같은 것들이요. 숫자 데이터니까 이걸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볼 수 있어요. 일단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재미있게 참여하니까 저도 좋아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만영
작업은 꾸준히 해왔으니까 요즘 특별히 많이 고민하는 건 예술가의 역할이에요. 예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AI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잖아요.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비슷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스마트폰으로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지만 AI는 그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해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요, 일단은 예술과 대중을 잘 연결시키는 일이 제 역할이라고 답을 내렸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나 워크숍 진행을 많이 하고 있고요. 참여하는 분들도 재미있게 받아들이니까 저도 욕심이 나서 더 열심히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상사 작업 시절의 정만영 작가 (사진제공 정만영)
정만영
사운드 설치미술가. 도시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필드레코딩)하여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GPS 데이터를 통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연의 소리를 음원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수의 단체전, 비엔날레 등에 참여해왔으며 <실상사 사운드 스케이프-소리비> 앨범을 정식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