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 작가는 인문학 강사이며 문화여행 도슨트로 도자기 문화에 대한 국내 최고의 저술가 겸 강연자다. 그는 젊은 시절 기자 및 공공기관 종사자로 활동했으나, 퇴직 후 도자기 문화의 신비함에 매료되어 인생 이모작기에 도자기 문화 작가로 전향했다.
그는 이제까지 총 15권의 책을 냈다.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와 ‘프로방스 라벤더 로드’와 같은 여행인문학 서적을 시작으로, 특히 도자기 주제 책은 자그마치 7권이나 집필했다. 3권은 유럽 도자기 쪽이며 또 다른 3권은 일본 도자기 쪽을 맛깔나게 분석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제 도자기 문화 분야에서 독보적 아성을 구축했다.
작금 한국의 음식은 K-푸드라 하여 글로벌 문화화하고 있는데 이는 K-도자기 혁명으로 연결될 수 있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 작가가 대단한 점은 젊은 시절 가족을 부양하는 세대주로서 책임에 따라 직장생활을 충실히 했고, 퇴직 후에는 현실 자아를 도자기 문화 전문작가라는 이상적 자아에 잘 인도한 점이다. 직장생활 중에도 세계 60여 개국을 공부한 그의 도자기 집필 노력은 엄청났다. 그가 즐겨 말하는 ‘최소 10년의 불광불급’ 교훈은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인생 교본이다.
올해 71세인 장혜숙 화가는 평범한 주부였다.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하였지만 결혼 후 자녀 교육에만 매진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난번에는 성파 대종사의 조계종 종정 취임식 때, 통도사에서 기념 설치미술전을 개최할 정도로 비상했다.
그녀의 인생전환은 뜻밖에, 봉사활동이었다. 자식들을 다 양육한 61세 때부터 지인이었던 상담전문가 김인숙 교수가 권하여 청소년보호관찰소에서 5년 정도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미술치료 상담법을 적용했는데, 미술이 꽉 막힌 사회에 치유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동남아에 가서 한국문화도 알리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때 대박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의 그림이 거장 이우환의 눈에 띄었던 것. 그 인연으로 그녀는 일본 우에노에 있는 유명한 동경예술대학 박사과정으로 진학했고, 현재 불교계에서도 그녀의 화풍과 재능을 아끼고 있다.
장혜숙 화가의 인생 이모작은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를 생각케 했다.
그러나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겠는가. 서러운 경단녀였으나 무욕의 봉사활동이 누군가를 감동케하여 인생의 행운으로 귀결된 사례 아니겠는가.
큰 도시의 장점은 무엇일까? 다양성이다. 역사적 깊이를 안고 있으되 새로운 문화가 착륙할 수 있는 개방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양성이다.
부산에 탱고 스튜디오가 있다 하면 대부분 “정말로?”라고 반문하겠지만 정말이다. 서면 롯데호텔 뒤에 오픈한 대형 스튜디오 ‘아미고’는 뜻밖에 34년 동안 영어 강사와 영어학원장으로 활동하던 최윤라 씨가 경영한다.
그는 7년 전 취미로 탱고를 시작했는데, 엄청난 매력에 빠져 아예 스튜디오를 개관해 버렸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세계적 마에스트로 쟝삐에로 갈디(G. Galdi)가 공연을 온 날이라 전국에서 탱친(탱고 동호인)이 140여 명이나 모였다.
화려했다. 탱고는 철저히 ‘소셜’이었다.
정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트는 광경은 축제였다.
그녀는 말한다. “내 안의 꿈이 춤을 추게 해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나 다름없죠.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론다(Ronda)’를 지키며 스텝을 밟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수 최백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데뷔 48년째로서 현재 74세인 그는 지금도 현역이다. 특히 5~60년대 태어난 사람들에게 노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입영 전야’는 최고였다. 젊은 날의 인생사에 함께한 그 가수가 지금도 계속 활동하고 있음은 더없는 위안이다. 가수 최백호는 요즘 후배들과 협업을 많이 한다. 그는 “어쩌다 보니 후배 뮤지션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어요”라고 하는데, 워낙 겸손한 태도가 배어있지만 협업하는 이는 린, 아이유, 에코브릿지의 이종명뿐만 아니라 지코, 스웨덴세탁소, 이현, 정승환, 타이거JK, 콜드, 죠지와 더불어 부산에서 활동하는 친친탱고, 옐로은 등 일일이 들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렇게 하여 그는 전번에 ‘부산에 가면’ ‘바다의 끝’이란 노래를 발표했고 또 그의 인생 70대를 기념하여 ‘찰나’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부산과 바다를 좋아하는 가수 최백호는 젊은 시절 많은 방황을 했다.
그런데 그의 싱어송라이터로서 노래 대부분은 그 아픈 경험과 외로움에서 건져지는 음률이다. 아픔과 상처가 오히려 오늘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워낙 거친 이 시절, 막막하게 방황하는 이들에게 메시지가 되고 있다.
욜드족, 욜디락스, 금퇴족, 팬슈머….
요즘 신중년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양해졌다. 새로운 소비력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배움에 초점을 맞춘 용어도 있다. 일본의 세컨드 스테이지대학이나 열중소학교(熱中小學校), 우리나라의 50플러스와 같은 개념이다.
어쨌거나 전환기 지금은 초고령화 생활양식과 삶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전에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동지다. 둘러보면 마음 나눌 사람, 양질의 정보를 주고받을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먼저 딛고 극복한 사람을 멘토로 삼고 동지가 되는 일이다. 그를 만나면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은퇴 후 다시 자리 잡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동지를 만나면 고통조차도 버릴 것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모든 순간도 도약의 밑거름임을 알게 된다. 한계를 넘어선 사람을 찾으라.
멘토가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