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하영문
‘우리 회사’...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 아픈 존재다. 하지만 막상 없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도, 우리 엄마의 마음도 공허해지는... 2년 전까지 부산문화재단은 나에게 ‘우리 회사’였다.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없다고 상상하면 허전한 그런 곳, 한때 내 이름과 늘 함께하던 존재.
지금은 사진 촬영업을 하는 2년 차 자영업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무심결에 부산문화재단을 ‘우리 회사’라고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산문화재단이 내 삶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는 존재임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앞날이 막막하던 시절, 내가 간절히 입사하고 싶었던 곳이 바로 부산문화재단이었기 때문이다. 합격 소식을 확인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의 부산문화재단은 나에게 자부심이었고 나의 큰 포부를 담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부산문화재단에서의 첫 1~2년은 고비의 연속이었다. 업무보고 예산란에 오타를 내거나 현수막 사이즈를 잘못 뽑는 실수는 흔하고, 행사 당일 내리던 비처럼 예상할 수 없는 일들까지...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이 연일 터지던 시절이었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고 뻔뻔함이 기본으로 탑재된 시점에야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았고 작은 실수에도 깊이 상심하던 ‘유리멘탈’ 시절이었기에 매 순간이 크나큰 위기처럼 느껴졌다.
그런 순간들마다 조용히 선배들이 나타나주었다. 때로는 문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가 하면 때로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며 함께 화를 내주기도 하고, 때로는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들의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모두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또 후배들과 인턴 대학생들이 정성스레 써준 편지, 점심시간에 함께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자던 팀장님, 좋은 경험을 주어 고맙다고 인사해주던 시민들에 대한 기억도 내 회사 생활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내가 일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상처는 결국 사람들을 통해 치유되었고 나는 그 덕분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부산문화재단에 근무하던 어느 날 연말 표창을 받으며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든 1인분 하게 만들어준 선배들에게 고맙습니다. 나도 선배들 같은 선배가 되겠습니다.”라고... 뻔뻔하게도 그 이듬해 퇴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답니다!
지금은 내 20대 절반을 함께했던 부산문화재단을 떠났지만, 내 삶은 여전히 그 시절을 담고 있다. 부산문화재단에서 행사를 기획하던 나는 이제 그 행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고, 견적서를 검토하던 나는 직접 견적서를 작성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한다. 가끔 촬영 현장에서 생기는 예기치 못한 일들도 재단에서 현장 민원을 처리하던 경험 덕분에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 지금에야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부산문화재단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많이 어려웠을 일들이다.
퇴사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나의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부산문화재단에서 보낸 시간은 내 일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였기에, 그 시간들을 쉽게 잊을 수 없다. 동료들에게 받은 응원과 위로 그리고 부산문화재단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배운 삶의 태도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가끔 부산문화재단을 ‘우리 회사’라고 부를 때 흠칫하며 아, ‘우리 회사’가 아니지 하고 바로잡기도 하지만, 재단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하면 글쎄... 여전히 ‘우리 회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끝으로 눈치도 다소 부족하고 재주도 미미하던 내가 이제 자영업자로서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는 이유는, 이 글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기회를 빌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나도 행복할 테니 당신도 꼭 행복하기를!
아직 보진 못했지만 마냥 좋아서 저장해두었던 영화 <벌새>의 대사로 글을 맺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은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하영문
부산문화재단에서 스물다섯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업무보고로 이야기하던 사람.
재단을 떠난 후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2년 차 자영업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