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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공간

고독이란 있을 수 없었던,
낭만의 그곳

김 정 사진박보은

“이거 기가 막힌 작품이잖아. 작가들은 자기 나름대로 작품이 다 훌륭해.
그렇지만 이 사람은 부산의 이런 큰 행사를 알리는 역할을 하잖아. 이게 중요하잖아.
자기 세계에서는 최고인지는 모르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잖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부산에서 잘 알려주지 않아.
돈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 - 그곳의 여섯 번째 여사장님

“소박하게 모였다. 좋은 손님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낭만이 있었다.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이름도 다 잊아뿐다. 연극하는 사람들도 많이 왔고. 다 돌아가셨다. 그때는 참 좋았지.” - 서양화가 오정민 화백님

“나는 경영을 했지만 대가들과 토론을 벌이며 싸웠던 곳이었어요. 재밌었다.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소박한 곳이었지만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를 만날 수 있었고,
서양화가, 한국화가, 서예가, 음악가, 연극인 등등 다방면의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한 계단이 업그레이드되는 곳이었다. 예술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그곳에서 젊음이 성숙해져 갔다.” - 경성대학교 경영학부 정봉길 명예교수님

부산은 초고령화 도시 상위권에 속하는 곳이다. 지역소멸위험 기초지자체가 몇 군데나 있다.
빈집이 많고 청년들은 유출된다고 하고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많은 도시가 되었다. 어느 영화에서 부산을 상징하는 메타포가 나왔는데 『노인과 바다』라는 책이었다. 노인은 본인만의, 1인의, 공간에서 고독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아빠와 살고 있는, 어쩌다 보니 캥거루족이 되어 있는데, 종종 생각하길, 아빠는 외로운 1인 가족, 노인으로 살고 계시지 않은가 싶다. 회사에서 일하고 먹고, 집 밖에서 운동하고 취미 생활하고. 주말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으니, 같이 살고 있지만 따로 살고 있달까? 이 정도면 하숙생 1명 거둔 1인 가족이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함께 나이 들어가며 부산의 초고령화에 기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고독, 외로움이라는 지역소멸 위험지역의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사는 곳은 해운대구인데 초고령화로 유명한(?) 원도심, 중구는 오죽할까. 초고령화를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나이 듦이 뭐 어때서? 혼자 사는 게 뭐 어때서? 반박하고 싶지만.

원도심, 중앙동에는 40대 초반에 들어선 내가 선배들로부터 이따금 전해 들었던 곳들이 있다.
다락방의 고 주경업 선생님, 양산박의 고 이상개 선생님. 이분들의 작고 소식을 통해 접했던 공간들이다. 그 사이에 ‘계림’이 있다. 계림? 중국 계림을 말하나? 지난 40~50년의 세월 동안 여섯 번째 사장님이 되신, 한근이가 잘 알아, 라며 답하기를 피하신 여사장님도 부산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님도 왜 계림인지 모르셨다. 이름의 의미는 몰라도 두 분의 공통된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였다.
특히 화백이라 불리는 분들의 집합소. 오다가다 네 번쯤 만나면 명함을 주고받거나 통성명을 한다.
다섯 번째가 되면 친구가 되어 있다. 여사장님이 첫 만남에 명함 주고받지 않았냐고 거드신다.
옆 테이블에 손님 세 분이 오셨다. 또 그 옆 테이블에 어르신 세 분이 오셨다. 작은 공간, 계림은 손님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행사장에서 챙겨온 빵과 케이크를 나눠드렸다. 김소장님의 부산 근현대사 한 장면에 대해 수업(?)을 듣던 중 여사장님께서 우리가 시키지 않은 안주 한 접시를 내어주셨다. 빵과 케이크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옆 테이블에서 보내주신 음식이었다. 그리곤 첫 만남에 우리는 명함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3년 전 부산으로 내려와 송도에 살고 있다는 사진 작가님과 1년 만에 만나러 온 친구분들.
사진 작업, 인생 이야기부터 “우리가 남이가”라는 대사로 유명해진 정치사의 한 장면에 대한 의견 충돌까지. 정치사에 대한 견해는 비록 다를지언정, 우리는 각자의 현재진행형 삶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루어질는지 알 수 없는 1년 뒤의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가 나눈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情)? 정을 나누었다는 것은 고독, 외로움과는 상반되는 것 아닌가?

원도심, 중앙동에는 어째서 예술인들이 많이 모였나요?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시청이 있었기 때문인가요? 시청도 시청이지만 수십 년 전에는 이 지역에 주요 언론사들이 자리했었다.
시청 공무원도 지역 언론사 기자들도, 특히 문화부, 문화예술계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문화예술인들도 공공기관, 언론사를 통해 일자리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중앙동에는 예술인들이 모이는 공간들이 생겼다. 계림, 양산박, 다락방, 강나루 등등 대략 7곳 이상이었던 듯하다. 이상하게도 이곳들은 예술장르별 특성까지 생겼던 듯하다. 계림은 그림, 양산박은 문학 같은.

지금의 여사장님에게 물었다. 이곳을 찾으시는 분들 중에 가장 아끼는 예술가가 있다면요? 최순대! 대중들이 몰라서 너무 안타까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온 이름이었다. 그리고 입구에 붙어 있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를 손으로 가리키셨다.

최순대 미술 감독님은 유명인이 아니셨던가? 하는 의아함을 품고 있는데 입구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 나누시던 어르신들께서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대야, 건강해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글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 오정민 화백님과의 공동취재가 어떻냐는 김소장님의 제안이 있었다.
게으름, 부담감 등으로 원고 마감 3일 전에 계림을 찾았기에 결국 연락을 드려보지 못했는데 다른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자리를 파하려던 순간! 오화백님이 오셨다. 여사장님께서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지 오화백님도 최근엔 오지 않으셨다고 하셨는데. 동행이 있으셨기에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놀라운 순간.

원고 마감일 오후 2시 30분. 남포지구대 맞은 편에 위치한 작은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오화백님, 정봉길 교수님과의 시간여행이 시작되었다. ‘부산을가꾸는모임’의 서세욱 회장님께서 닭 계(鷄), 수풀 림(林). 사람들이 많이 모이라는 뜻으로 계림이라 이름 지어 주셨다고 한다. 저명인사들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미모와 지성의 여사장님들, 극단 레파토리 시스템을 열성적으로 지원하신 강기홍 선생님, 부산 문화 부흥에 기여하신 국제신문 고 김규태 기자님과 부산일보 고 박정인 기자님, 백성도 교수님(서양화가) 등등 예술가를 사랑했던 사람들. 오영재(1923~1999), 천재동(1915~2007), 임호(1918~1974), 김일랑(1934~2020), 변창헌(1930~2010, 서예가), 주정이(1944~), 정재윤(~2016), 임명수(1940~2019, 시인), 강인주(1948~), 추연근(1924~2013), 신창호(1928~2003), 안기태(1942~)...
많이들 돌아가셨다. 지금 연세가 93세지, 오늘 저녁에 전시 오픈한다, 이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시며 떠올려 주신 계림의 예술가들.

중구? 지역소멸 위험지구, 초고령화 지역이라고 인구통계지수가 보여준다지만 고독이 있을 수 없는 공간이 있기에 외로운 동네가 아닐지도 모른다. 1인 가족 같지만 결국 2인 가족이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친근하게 반말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사장님과 소장님처럼. 후배 작가의 건강을 염려하는 백발의 선배들처럼.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한 우정을 쌓고 있는, 같은 원도심 동네 주민이기도 한 오화백님과 정교수님처럼.

당신에게도 고독을 잊게 해주는 낭만적인 공간이, 사랑하는 예술가가 있나요?

김 정

부산문화재단 기획홍보팀에서 일하는 중. 외롭게 살고 싶지 않아서 나름 치열하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
그 방향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말인데, 함께 막걸리 한잔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