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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사적인 것(private)’을
‘공적인 것(public)’으로 만드는
출판(publication)이라는 실천

장현정

바야흐로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다. 스마트폰만 켜면 보고 즐길 거리가 가득하니 굳이 책을 읽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올해 4월 발표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실제로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종이책을 기준으로 1년에 단 한 권이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32.3%이니 통계대로라면 우리나라 성인 3명 중 2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이 수치는 10년 전 독서율 71.4%와 비교하면 무려 39.1%나 감소한 것이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등을 더한 종합 독서율을 봐도 43%에 그치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1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렇게 아무도 안 읽는 시대에 과연 출판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1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절반 넘는 사람들보다는 그럼에도 기어코 읽는 사람들, 꿋꿋하게 책을 찾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출판은 원래 전통적으로 소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출판의 역사만 보더라도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싼값에 책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도 독서를 위해서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여유가 필요해서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이들이 아니라면 교육 및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책도 많이 읽게 되는 독서 양극화가 여전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기보다는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가 없어 ‘못’ 읽는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할지도 모르겠다.
바쁜 와중에도 마음을 차분하게 정돈하고 책을 읽는 행위는,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상상하는 자들의 몫이다. 기득권층이나 지배자들이 오랫동안 출판을 진흥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억압과 감시, 검열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출판과 독서가 진흥의 대상이 된 것은 군사정권이 끝난 1993년 이후의 일이고 2002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출판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니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출판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출판은 본질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비밀, 기성 질서 바깥의 이야기,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불온하고 위험한(?) 행위이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상업 출판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며 사람들의 욕망에 편승해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치 있는 출판은 카프카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을 내놓는 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읽는 소수의 인간들은 결국 언젠가 쓰게 된다.
내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독자는 미래의 저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더 근사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더 품위 있는 존재가 되려는 욕망이 있는 한 출판은 계속될 것이다. 출판(publication)은 바로 그런 건강한 욕망을 ‘사적인(private)’ 차원에서 ‘공적인(public)’ 차원으로 끌어 올려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자에서 ‘출(出)’은 세상에 공개한다는 뜻을 품고 있고, 영어에서 출판을 의미하는 ‘publish’, ‘publication’ 같은 단어도 공적인 것을 의미하는 ‘public’에서 유래했다.
“영어권에서 출판은 14세기 후반에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알리는 행위,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행위’를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와 라틴어 ‘퍼블리시옹’과 직접적으로 ‘공개적으로 만드는 것, 공공 재무부에 대한 판결’을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한 명사 ‘퍼블리쿠스’에서 유래했다. 이후 ‘판매 또는 배포를 통해 대중에게 서면 또는 인쇄물을 발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로는 1570년대에, 그렇게 발행되고 제공되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는 1650년대부터 기록되기 시작했다.”(etymonline.com 참고)

한편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MZ세대나 시니어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서 모임, 독립서점, 독립출판 등을 향한 관심과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역설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이전과 달리 누구나 블로그나 SNS 등 자기 매체를 소유하고, 이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하며 자기 이야기를 기록하고 축적하고 표현하려는 욕구가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거기 맞춰 출판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학위가 있거나 등단했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인정받아야만 책을 쓰던 시대는 확실히 지난 것 같다. 문화 각 분야에서 인디(indie), 생비자(生費者, pro-sumer), DIY 등이 유행한 지도 오래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라도 출판을 통하면 공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공적인 기록을 통해 학습하여 또 다른 공적인 기록을 생산해 후대에 남긴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인류의 지혜를 만나고 한자리에 앉아 온 세상을 만나볼 수 있는 이유다.
출판을 통해 기록되고 공유된 기록과 이야기들은 새로운 문화와 일상이 되고, 인류의 ‘습(習)’이 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지금 우리 시대를 잘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에게는 구슬 자체가 부족했고 귀했으나 이제 구슬은 차고 넘치는 시대가 되었다. 관건은 어떻게 꿸 것인가다. 이제 구슬은 서 말 아니라 삼십 말, 아니 삼백 말도 넘는다. 이렇게 차고 넘치는 구슬을 어떻게 꿸 것인가. 어느 때보다 안목이 중요해졌다. 또 무언가를 더하는 능력보다 고르고 솎아내는 능력, 다시 말해 비우는 능력이 훨씬 중요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이른바 ‘편집(編輯)’의 시대인 것이다.
말 그대로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으고 엮어내는’ 일로, 이 편집은 출판의 꽃이라고 불리는 출판의 핵심이기도 하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

사람들은 종종 책 읽는 게 먹고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인문학이 무슨 쓸모가 있는지 묻곤 한다. 하지만 당장 이 글을 읽는 당신만 하더라도 기왕이면 함께 있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함께하는 지금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 눈치가 있고 맥락을 파악하는 힘이 있어 어떤 상황에서라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굳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증명할 일도 아니지만, 이런 질문 자체가 싱겁기 그지없다.

도가(道家)에서는 인간에게 세 개의 단전이 있다고 말한다. 배꼽 아래, 복부와 심장, 그리고 뇌인데 이것은 그대로 건강, 재력 그리고 지적인 힘과 연결된다. 인간은 배꼽 아래 성적 매력을 비롯한 건강이 있어야 하고, 복부를 편안하게 해줄 만한 경제적 힘도 있어야겠지만 의미와 재미를 부여하고 이야기할 줄 아는 능력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출판이 하는 역할도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 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지금보다 더 많이 나눌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남의 이야기, 특히 근대 이후 서구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고 국가 차원에서도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편향성이 심했다. 이는 곧바로 정신과 문화의 식민성으로 이어진다.
우리 지역의 이야기, 나와 이웃의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하고 그 이야기들이 사적(private)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 모두의 것(public)으로 기록되고 전승될 수 있도록 더 아름답고 근사한 출판(publication) 행위들이 늘어나길 소망해 본다.

장현정

작가, 출판인, 사회학자, 문화기획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인디 1세대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뒤늦게 사회학을 공부했고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인 2008년 11월에 출판사 ‘호밀밭’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약 300여 종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