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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완벽을 향한 움직임과
불완전함에 깃든 아름다움 경희댄스시어터 대표·안무가 박재현

오범택 사진·영상유돈희

움직임이야말로 가장 본능적인 예술의 언어다. 말로는 닿을 수 없는 깊고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는 세계.
그 안에서 박재현 안무가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서사를 몸의 언어로 풀어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움직임은 때론 불완전함 속에서 더욱 빛나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완벽이 아닌 그 너머의 진솔함에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안무가님은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오셨습니다.
부산을 주 활동 무대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재현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부산은 문화적으로, 특히 댄스계를 주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들이 폐교되고 인프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무용 인구가 점차 줄어들었죠. 많은 예술가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었고요. 저 역시 어릴 때부터 외국이나 서울 같은 여러 지역에서 활동해 왔지만, 결국엔 부산으로 돌아왔어요. 고향이라는 점에서 부산이 심적으로 가장 잘 맞는 곳이라는 느껴졌거든요. 물론 활동 범위가 예전만큼 넓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역의 무용수들이 함께 모여서 노력한다면 충분히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지역이 어디든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저에게는 최고의 무대입니다.
다양한 팀에서 활동하시다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경희댄스시어터를 창단하게 되셨다고요?
재현 팀에서 활동하면서 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2016년에 경희댄스시어터를 창단하게 됐죠. 저는 주로 제 주변 이야기들을 다루는 편인데, 어머니 이야기부터 친구들, 사물, 심지어 애완동물까지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저한테는 조금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직접 보고 느낀 것들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도 제가 사회적으로 겪게 될 일들이나 당면할 주제들을 다루면서 작업할 것 같아요. 가장 잘 아는 것들로 작업하는 방식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지 않을까요.
<우물가 살인사건-그곳엔 사람이 산다> 작품도 회동수원지를 걷다가, 수몰 마을의 역사적 배경을 떠올리며 구상하신 것과 일맥상통한 부분 같아요. 지금까지 이러한 작업 방식으로 수많은 공연을 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재현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이라는 작품이에요. 저는 순정만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이미라 작가의 <인어공주를 위하여>라는 작품에서 큰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작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죠.
인어공주는 하체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답게 비치는 존재이면서 마지막에 물거품처럼 사라지잖아요.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에서도 신체적으로나 심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특수 계층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동화처럼 잔인하면서도 아름답게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죠.
이 작품을 계기로 저의 작업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잔혹함과 고통을 다루면서도,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메시지를 담아 내는 것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 되었죠.
지금도 그 부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신작 <수선되는 밤>이 더욱 기대되는데요. 작품 소개 부탁드립니다.
재현 <수선되는 밤>은 국립현대무용단이 지역 극장과 협력해 창작자를 발굴하고 현대무용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코레오 커넥션’에 선정된 작품입니다. 부산·경남권에서만 12팀이 지원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는데, 그 가운데 <수선되는 밤>이 선정되어 정말 기뻤죠. 참여한 안무가들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 누가 뽑혔더라도 당연하게 여겼을 거예요.
<수선되는 밤>에서 ‘수선(垂線)’은 직선이나 평면과 직각을 이루는 선을 의미해요. 수선은 완벽한 선이지만,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더 이상 수선이 아니게 되잖아요. 그래서 수선을 유토피아에 비유했어요.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삶, 이상적인 삶에 가까운 모습이죠. 작품 안에서도 난민들이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 그 앞에 도달하지 못해요.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이 그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요소들이 오히려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를 방해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완벽함은 결국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거죠. 사실 완벽이라는 정의도 누군가가 정한 기준일 뿐이잖아요. 굳이 비교해서 불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듯, 오히려 내가 처한 상황 자체가 완벽할 수도 있듯 말이죠.
안무가님의 작업 방식도 항상 그 완벽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선되는 밤>을 통해 느낀 점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재현 저는 작업할 때 약간 편집증적인 면이 있어요. 예전에는 1분 1초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작품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함을 추구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리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결과물에도 허점이 보이더라고요. 이번 <수선되는 밤>에서는 그런 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무용수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기 시작했어요. 제가 지시한 대로만 움직이는 것보다, 무용수 스스로가 선택하고 해석해서 춤을 출 때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거든요.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고, 무용수를 믿고 맡기고 있죠. 비록 어떠한 기준에서 봤을 때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수선되는 밤>은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 중 가장 근사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안무를 구성할 때 작은 감정이나 사물에 집중하신다고 들었어요.
섬세한 부분을 무대에서 구현해 내기 위해 디렉팅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무엇인가요?
재현 디렉팅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예요.
물론 무대 구성, 조명, 의상도 중요하지만, 결국 춤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품을 만들 때는 먼저 주제를 공유합니다. 무용수들이 리서치를 통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는지 정리해 오면,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해요. 예를 들어, 10명의 무용수에게 질문을 던지면, 각기 다른 10개, 아니 100개 이상의 답이 나올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춤으로 표현될 감정과 움직임이 만들어집니다. 몇 차례에 걸쳐 영상으로 촬영하고 분석하면서, 가장 좋은 부분을 골라내 안무를 완성해 나가죠. 최종적으로는 제 생각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함께 섞어서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큰 그림을 그리며 작업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작은 감정이나 사물, 틈새에 있는 요소들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보려 노력해요. 나이가 들면서 섬세한 감정들이 더 잘 보이기도 하고요. 물론 너무 깊이 파고들면 힘들 때도 있지만, 세밀한 부분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재미가 아주 큽니다.
저마다의 소통을 거쳐 우리만의 표현으로 드러내는 작업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이 오는 순간도 있으실 텐데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재현 솔직히 말해서, 항상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작품을 할 때마다 고비를 넘기고 또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죠. 그런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도태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덕분에 조금씩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 과정에서도 늘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작품을 중간에 다시 보고, 수정하는 일이 반복되죠. 완벽을 목표로 하다가도 막상 돌이켜보면 허점이 보이기 마련이거든요. 그럴 때마다 ‘예(YES)’나 ‘아니오(NO)’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와요.
때로는 고집을 밀고 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모든 게 항상 옳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죠.
작품을 다시 돌아보며 ‘이게 정말 맞는 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긍정과 부정을 명확히 구분하는 과정을 거쳐요.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자신을 점검하고, 때로는 자신과 타협하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셈이죠.
경희댄스시어터 <수선되는 밤> 공연 (황승택 촬영)
그 과정을 거닐고 있을 지역 안무가들에게, 앞서 걸어가고 있는 선배 안무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재현 특별히 전할 메시지는 없어요. 고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니까요(웃음).
다만, 꼭 말하고 싶은 건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쭉 하면 된다’는 거예요. 이 길이 맞지 않다고 느끼면 몇 번이고 돌아보고, 잠시 그만뒀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힘들게 할 필요도 없어요. 무용을 선택했을 때는 행복해야 하잖아요. 만약 춤이 고통스럽다면 굳이 계속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잠시 멈췄을 때, 그럼에도 무용이 가장 행복하다면 그때 다시 선택하면 되는 거죠. 당장 어떠한 조언보다는, 각자 알아서 자신의 길을 찾으면 좋겠어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든 그 지점은 꼭 행복이었으면 하고요.
작품을 완성하는 최종 파트너, 바로 ‘관객’인데요. 공연을 보고 난 후, 관객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돌아갔으면 하나요?
재현 한번쯤 ‘이게 뭐였지?’ 하고 생각해서 봐주시면 좋겠어요. 길을 걷다가 혹은 잠들기 전, 문득 한 번이라도 작품을 떠올린다면, 관객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파문 하나만 일으켰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수선되는 밤>은 난민 문제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처음엔 저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집이 없는 사람을 보고 난민이라고 하듯, 우리도 떠돌아다니는 난민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만 있을 뿐, 어쩌면 모든 사람이 겪고 있을 그 마음을 담백하게 담아보았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도 인간의 아픔이나 군상 같은 주제를 더 깊이 탐구하고, 관객들에게 새롭고 솔직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박재현

경희댄스시어터 대표.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고 언제나 부산에서 활동하고 싶은, 예술가이고 싶은 안무가.
<노년의 기록>, <금홍아 금홍아>로 부산무용제 대상 등 다양한 작품을 수상했으며 올해 국립현대무용단 ‘코레오 커넥션’ 프로젝트에 <수선되는 밤>이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