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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한국 전통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김지윤

김지윤 피리독주회 <보은지향> 국립국악원 우면당, 2014

현재 21세기 전통음악의 한 측면은 전통에 바탕을 둔 현대적 재해석과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적 수용을 통해 새로운 시대 흐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은 이러한 음악의 실험적 또는 과도기적 경향을 더 이상 낯설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이해와 폭이 넓어졌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발전과 수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국악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필자가 전공한 피리라는 악기는 서역 지역의 피리가 실크로드를 따라 고구려에 전해지며 토착화되고 향악화된 국악기다. 피리는 전통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며 1,500년을 걸쳐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1,500년의 역사를 품은 피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통을 오롯이 지켜가는 가운데 그 바탕을 뿌리 삼아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음악 사조가 생겨나 융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적 변화로 인한 단절의 위기도 맞으면서 변화를 거듭해왔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예술의 변화와 발전이 컸던 시기인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문고로 대표되는 당시 음악은 인근 국가인 한나라와의 교류로 문화를 비롯한 서역의 문명이 대륙을 통한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전해졌고, 당시 한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에 집결되었다. 이렇게 모인 독특한 각 민족의 음악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피리 역시 이 당시 서역에서 두루 통용되던 관악기로 고구려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진 서역 음악은 기존의 고구려음악 바탕 아래 향악화되었다. 7세기에는 수나라 궁중 연회에 중앙아시아 및 인도 등 주변국의 음악 사절단으로 고구려악이 초청될 만큼 고구려의 융성한 음악 문화로서 꽃피웠다.
이러한 고구려악은 이후 당나라의 ‘십부기’에도 포함되어 주변 나라와 교류할 만큼 높은 수준이었음을 ‘수서’, ‘구당서’ 등에 전하고 있다. 외래 문화를 수용하여 더욱 발전된 음악으로 정착시킨 고구려악이 우리나라 융합예술의 시초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고구려악은 7세기 무렵 일본의 음악에도 영향을 주어 일본 궁중음악인 가가쿠(雅樂)의 큰 축을 이루는 우방악인 고마가쿠(高麗樂)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그 음악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전공 악기인 피리로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학기마다 아악, 정악, 민속악 독주회를 개최하고 3년간 18세기 선비들이 향유했던 성악 장르인 가곡 중 남창 가곡의 피리선율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필자가 연구했던 가곡은 18세기 실학자들이 신분 차이를 넘어 사대부, 중인, 악공들로 구성된 새로운 풍류방 문화를 이끌며 정악(正樂)이라 부르는 장르를 생겨나게 하는 동시에 조선 전기의 음악과는 다른 민간 주도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꽃피게 하는 단초를 열었던 음악 장르다. 필자는 조선 후기 가곡의 반주 선율이 기악화되며 파생된 ‘자진한잎’이라는 방대한 기악곡과 영산회상 중 ‘평조회상’ 전곡을 담은 음반을 발매하였다. 학업을 하는 동안 전통에 충실한 연구와 연주를 해오며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대중과 소통하는 음악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된 것 같다.

소리연구회 소리 숲 기획공연 <소리의 숲 길>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2016

2013년 ‘소리연구회 소리 숲’이라는 음악 단체와 기획사 대표로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장르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음향 회사인 돌비 본사에 초청 연주회를 하게 되었는데, 고심 끝에 바이올린 연주자와 궁중음악, 클래식 원곡 연주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궁중음악의 대금 선율을 연주하며 미분음의 미묘한 차이를 익히며 정통 국악 원곡 연주에 처음 도전했다. 클래식은 클래식으로 통한다고 했던가? 호흡이 점점 맞아가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듯 연주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연주 후 돌비 인터뷰를 통해 공식 블로그에 연주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2015년에는 서울 M극장의 ‘바람의 합주’ 공연에서 피리, 바이올린, 피아노 트리오 편성으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연주를 비롯해 바이올린과 궁중음악 ‘수제천’ 이중주, 바리톤과 ‘투우사의 노래’, 드럼과 태평소 시나위의 원곡 연주를 시도하였다. 이 공연으로 그해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심사위원 선정 특별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이후 현대무용 작품 ‘붉은 가면의 진실’의 음악감독으로 피리, 바이올린, 피아노 편성으로 생상스, 쇼팽, 슈베르트, 할보센 곡을 직접 연주하며 양악기와 국악기가 이루어 내는 절묘한 음색이라는 무용평론가의 평을 듣기도 했다. 이러한 클래식과 현대무용의 콜라보 작업은 계속되었고, 2017년에는 체코비르투오지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베토벤 ‘월광소나타’, 비발디 ‘사계’, ‘아리랑’을 현지에서 녹음하고 <피리, 클래식을 만나다>라는 음반을 발매했다. 국악기 연주자가 해외 현지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원곡 연주는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음반의 장르 분류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기억이 난다.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이러한 낯선 시도에 긍정적인 시선보다는 의아한 시선이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콜라보 연주가 더 이상 연주자나 관객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정말로 다행스럽고 기쁘다.

2019년도에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수성월드뮤직페스티벌’에 한국 아티스트로 초청되어 연주할 작품을 구상하면서 처음으로 DJ 프로듀서와 EDM장르를 콜라보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흥을 세계와 소통하고자 기층음악인 농악을 현대적으로 풀어내어 농악에서 유일한 선율악기인 태평소와 나머지 타악기 사물 역할은 디지털 사운드로 대체해 ‘쾌지나칭칭’, ‘아리랑’ 등을 연주하며 신명 나는 판을 열었다. 이러한 DJ 프로듀서와의 작업으로 2020년 디지털 싱글 , 2022년 를 해외레이블에 발매하였고 지금도 작업은 진행 중이다.

서양의 작곡 어법에서 전통음악의 색깔을 녹여내는 서양 작곡가와의 콜라보로 피리와 하프, 피리와 전자 음향, 피리와 클라리넷, 플루트 앙상블 등 새로운 창작곡 초연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2018년부터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BeFM 부산영어방송, TBN 부산교통방송, 부산 MBC 라디오 국악코너 진행을 통해 전통음악과 더불어 현재 다양하게 시도되는 새로운 국악곡을 청취자들에게 전하며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부산영어방송의 시보음악을 종묘제례악 태평소 선율로 제작하기도 했고, 2019년부터 지금까지 신문사 음악 필진으로 전통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꾸준히 독자와 만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더욱 다양한 예술의 융합 장르가 서로의 색깔은 지키며 양립하는 이러한 새로운 콘텐츠는 앞으로 더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예술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활용에 대해 더 깊은 학문적 연구를 하고 싶어 부산외국어대에서 경영학 공부를 시작하여 기업의 특성에 따른 예술 콘텐츠 활용이 고객몰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 콘텐츠가 기업에 실무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기 위한 아티스트와 기업 간의 상생 방안을 학문적으로 모색해 본 뜻깊은 시간이었고 실제적 활용은 나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21세기 문화예술의 화두는 ‘융합’일 것이다. 지금도 기존 형식이나 장르를 탈피한 새로운 다원예술 작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음악 역시 다양한 장르와 만나 다양하게 음악적으로 변용되어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트렌드가 시간이 지나 고착화되고 지속되어 지금의 현시대 음악이 미래의 고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김지윤

음악박사이자 경영학박사이다. 피리연주자, 기획자, 방송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예술에서 새로운 앎을 모색하는 노마드의 삶을 꿈꾸는 아티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