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연구실 내 자리 앞에는 한 제자가 열심히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실천하고 있다. 학이시습이란 『논어』 제1장에 나오는 문장 중 한 구절로써 ‘배우고 그것을 무시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학습(學習)’은 ‘학이시습’의 줄임말이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중 틈틈이 서예를 익히고 있다. 열심히 법첩(法帖)을 보고 서예(書藝)를 학습하며 본인만의 것으로 체득(體得)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서예는 크게 세 가지로 공부의 단계를 나눌 수 있는데 평정(平正) – 험절(險絶) – 평정이다. 처음의 평정은 아무것도 모를 때의 순수함 그 자체를 말한다. 즉 무지(無智)의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학습을 통해 조금씩 몸에 체득되고 자신감이 붙을 때쯤 험절의 시기가 나타난다. 이 시기는 인간으로 말하자면 사춘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평정을 통하여 다져놓은 체득된 습(習)을 가지고 오만 잔기술을 부리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는데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마지막 평정의 단계인 진정한 본성(本性)의 날갯짓을 하지 못한다. 그 예로 강남 봉은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남긴 판전(板殿)이라는 현판이 있다. 작고하기 사흘 전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리 봐도 잘 썼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어리숙한 모습에 끌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감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평정과 험절의 시기를 부단히 견디어 내어 끝끝내 체득되어 있는 각가지의 습을 버린 온전한 본성의 날갯짓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습대로 살다가 죽기 마련이다. 습대로 살면 참 편하다. 그게 좋은 습이든 나쁜 습이든 몸에 체득되어 자리 잡는 순간 좋고 나쁨의 구분조차 되지 않는 것이 습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누구나 유년 시절부터 수없는 학습을 통해 습을 쌓아왔다.
그러나 그 습은 인생을 살아 가는 데 있어서 아주 자그마한 모래알 같은 지식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지식을 쌓는 습에 온전히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지혜의 습을 쌓는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인생은 지식(知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지혜의 습을 통해 내면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만 습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단한 학습을 통해 습을 쌓고 또 습을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아! 오늘 참 습(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