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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習)의 향연

도홍 김상지

도홍 김상지 <본래면목5> 2023

지금 연구실 내 자리 앞에는 한 제자가 열심히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실천하고 있다. 학이시습이란 『논어』 제1장에 나오는 문장 중 한 구절로써 ‘배우고 그것을 무시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학습(學習)’은 ‘학이시습’의 줄임말이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중 틈틈이 서예를 익히고 있다. 열심히 법첩(法帖)을 보고 서예(書藝)를 학습하며 본인만의 것으로 체득(體得)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서예는 크게 세 가지로 공부의 단계를 나눌 수 있는데 평정(平正) – 험절(險絶) – 평정이다. 처음의 평정은 아무것도 모를 때의 순수함 그 자체를 말한다. 즉 무지(無智)의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학습을 통해 조금씩 몸에 체득되고 자신감이 붙을 때쯤 험절의 시기가 나타난다. 이 시기는 인간으로 말하자면 사춘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평정을 통하여 다져놓은 체득된 습(習)을 가지고 오만 잔기술을 부리는 시기이다.

도홍 김상지 <습의 향연> 2024

이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는데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마지막 평정의 단계인 진정한 본성(本性)의 날갯짓을 하지 못한다. 그 예로 강남 봉은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남긴 판전(板殿)이라는 현판이 있다. 작고하기 사흘 전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리 봐도 잘 썼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어리숙한 모습에 끌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감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평정과 험절의 시기를 부단히 견디어 내어 끝끝내 체득되어 있는 각가지의 습을 버린 온전한 본성의 날갯짓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습대로 살다가 죽기 마련이다. 습대로 살면 참 편하다. 그게 좋은 습이든 나쁜 습이든 몸에 체득되어 자리 잡는 순간 좋고 나쁨의 구분조차 되지 않는 것이 습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누구나 유년 시절부터 수없는 학습을 통해 습을 쌓아왔다.

그러나 그 습은 인생을 살아 가는 데 있어서 아주 자그마한 모래알 같은 지식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지식을 쌓는 습에 온전히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지혜의 습을 쌓는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인생은 지식(知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지혜의 습을 통해 내면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만 습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단한 학습을 통해 습을 쌓고 또 습을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아! 오늘 참 습(濕)하다.

도홍 김상지 <본래면목1> 2024
도홍 김상지 <고운 최치원 선생 시> 2024

도홍 김상지

부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익산, 양산, 경주를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2019년 제38회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서예부문 역대 최연소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사랑하는 최순이의 하나뿐인 남편으로 부산과 경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