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박미라
‘금발머리 내 동생’으로 초등학교 강연을 할 때,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생업이 바쁜 어른들은 쉽게 답하지 못하는데, 학생들은 제법 정답과 가깝게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구촌에 관심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인류가 경계 없이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걸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다. 어른들은 선을 긋고 편을 나눈다. 그 영향을 받은 아이들 역시 교실 안에서 편을 나누고 힘을 겨루는 모습을 종종 본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은 완전히 물들지 않았다. 언제든 마음을 열고 나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가 어눌한 친구들도 함께 품어준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금발머리 내 동생’은 나에게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동화책이다. 2019년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세상에 나왔다. 다문화 아이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담은 4편의 단편을 묶은 책이다. 엄마의 재혼으로 금발머리 동생을 갖게 된 하나,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모함마드, 과거 피부색이 까맣다는 이유로 케냐 친구를 괴롭혔던 걸 미국으로 이사 간 후 반성하는 유석이, 고향에 사랑하는 할머니를 둔 몽골 소녀 알리마가 등장한다. 우리 아이들이 이들의 입장이 되어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 왜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기를 기대했다.
이 이야기들의 씨앗은 부산영어방송 라디오 다큐멘터리 ‘타렉 쿠히 형제의 꿈꾸는 바이올린’에 구성을 맡아 다문화 아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생겨났다. 조금 다른 외모, 서투른 언어 등 다양한 배경과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지만 그들은 그냥 한국인이었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달라 보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그냥 우리 아이와 똑같은 그 또래 아이들일뿐이다.
얼마 전 부산이 ‘인구 소멸 위험’ 단계에 돌입했다고 한다. 부산의 합계 출생률은 0.66. 저출생과 초고령화는 당장 코앞의 문제가 되었다. 정부와 부산시는 결혼이주를 비롯해 해외 인재 유입 등 해외에서 인구를 유입하는 방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비중이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다문화 유치를 그냥 인구 부양책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부산이 그들의 입장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가진 역동적이고 풍부한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일본은 30년 전에 저출생, 다문화 갈등 등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경험했다. 물론 지금도 인구 위기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금발머리 내 동생’에 관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일본 유니에이전시를 통해 출판사로 문의가 왔다. 내 책이 일본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니…. 처음 일본 출판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떨렸다. 한편으로 해외 출판이 그리 멀리 있는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관련 기관은 해외 판권 수출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판 책은 신일본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표지는 양장본으로 고급스러워졌다. 재밌는 건, 제목 ‘금발머리 내 동생’에서 ‘여동생은 금발머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한국어와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반영한 결과이리라. 일본에 사는 동생이 서점에서 책을 사 회사 동료에게 선물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동생에게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어 뿌듯했다.
‘금발머리 내 동생’이 이렇게 확장될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이었다. 품고 있던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할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혹자는 부산문화재단이 여러 작가에게 소액을 나눠 지원하는 현재의 방식보다 흥행 가능성이 있는 작가에게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소액으로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소액 다 지원과 집중 지원, 투 트랙으로 가는 건 어떨까?
올해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한 권의 책이 더 독자들을 만난다. ‘별이와 북극여우(가제)’라는 동시집이다. 짧은 글 안에 아이들의 마음을 담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동안 동화책을 몇 권 출간했지만 동시집은 처음이다. 부산문화재단이 나에게 동시작가라는 타이틀도 달아주는 것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별이와 북극여우’로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박미라
동화 쓰는 방송 작가
겨울에는 팥빙수와 공포를, 여름에는 추어탕과 로맨스를 즐깁니다.
조금 다르게 보고 조금 다르게 생각할 때, 창작의 길이 열린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