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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중력의 무게 -
디뎌 살아나고, 솟아 사라진다.

신상현

이번에 ‘시어터_아(我)’에서 기획한 <중력의 무게>는 전체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춤꾼으로 청년기를 보내고 일정 정도의 나이가 든 지금의 ‘몸’에 이르러 나는 인간이 겪는 몸의 ‘노화’ 그 속에서 물리적 시간과 부대낌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인간의 ‘존재(存在)’에 가장 큰 객관적 에너지로 작용하는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중력’이라는 키워드에 마음이 간 것도 이러한 개인적 변화와 맞물려 있는 듯하다.
뉴턴이 중력을 증명하기 전 존재하고 있던 원초적 에너지 ‘중력’에서 그 원초적 에너지 속에서 존재하고 있던 ‘움직임- 춤’으로 두 개의 단어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나는 ‘춤’과 ‘중력’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서 춤꾼의 움직임 속으로 끌어 들여오고 싶었다.
8장에 걸쳐서 구획된 각각의 장에는 각기 다른 음악들이 선택되었는데, 그레고리안 찬트, 말러의 아다지에토, 리게티의 레퀴엠, 베르디의 레퀴엠, 헨델의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존 애덤스의 루프 앤 벌스 등등 클래식 음악의 각 시대를 오가는 여러 작곡가의 곡들로 짜여 있다. 무용 무대에서 곡 선정은 아주 사적으로는 안무가의 음악적 취향이 반영되기도 하고, 이와는 다르게 객관적으로 그 음악이 가지는 성격에 의해 직접적 무대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혹은 전자 후자와는 완전히 다른 인식의 바탕 위에서 음악적 요소들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것이 무대의 방해 요소로 치부되어 아주 부수적인 요소로서 음향 효과적인 역할 정도로 세팅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간의 작업을 돌아보면 내가 그려내는 무대 속에서 음악은 전체 무대에 ‘정서’와 ‘색채’를 덧입히는 중요 요소로써 사용되고 있다. 무대의 첫 장은 ‘그레고리안 찬트’의 울림 속에서 지면과 맞닿아 있는 ‘사족보행’의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는 관객들을 향한,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서사’ 속으로의 초대 의식과 이 모든 ‘서사’의 출발을 인간의 가장 원시적 움직임 속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안무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3장에서는 ‘중력’이 의미하는 복합적인 이미지를 무용수들의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각각의 무용수의 불규칙적이고 산발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움직임 속에서, 손동작과 결합된 ‘중력’의 작용과 힘의 방향에 대한 묘사 등이 말러의 <아다지에토> 선율 위에 중첩되는데, 인간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희로애락’의 굴곡을 담담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무대의 중요한 키워드인 ‘중력’은 모든 존재를 현실 세계에 발붙이게 하고 자신의 형태를 유지시키는 ‘힘’으로써 작용한다. 이러한 ‘내부’로의 지향성을 가진 중력의 속성에 반해 외부로 향하며 적정한 ‘존재’의 거리를 만들어 내는 ‘힘’은 ‘원심력’이다. 다른 지향점을 향하고 있는 두 개의 시선-‘원(圆)’은 이러한 방향성이 다른 두 ‘힘’이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공간’이다. 4장에서 무용수는 ‘solo’의 움직임 속에서 ‘원’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또 그 공간 속에서 존재한다. 공간을 만들어 내는 부딪히는 두 개의 ‘힘’, 그 힘이 존재하는 공간, 그 공간 안에 실재하는 ‘나’, 이러한 흐름의 연속선상 위에서 또다시 ‘나’에게서 출발하는, ‘공간’을 존재하게 하는 힘,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의 움직임 속에서 생성되고 만들어지고 또 소멸된다.

‘원’이라는 공간과 그 형태가 가지는 복합적 의미-내부로 향하는 에너지와 외부로 향하는 에너지가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공간-는 전체 무대 공간 설정으로도 확장되어 보여지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프로시니엄 무대와는 다른 원형의 무대 공간 설정이다.
무대 위에 서는 공연자로서 ‘프로시니엄 무대(액자 무대)’가 가지는 일방적인 시선의 방향에서 느껴왔던 ‘소통’의 한계와 무대 구조에서 설정되어 질 수 밖에 없는 ‘시선의 위계’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욕구는 전술한 내용에서 언급한 무용수가 만들어 낸 ‘원’의 공간을 더 크게 확장해 관객들의 시선과 무대를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원’의 공간 속에 위치하게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는데 이번 ‘중력의 무게’에서는 공연 공간을 일반적인 무대와는 차별화된 가변형 무대 즉, 원형 극장의 공간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5장은 남성 무용수의 ‘solo’로 이어지는데 자신의 의지와 반하게 작용하는 외부적 요인으로서 존재하는 ‘힘’을 설정하고 그 외부적 ‘힘’을 자신의 ‘몸’ 속으로 흡수하는 움직임을 통하여 외부적 ‘에너지’와의 부딪힘과 ‘체화’의 과정을 통한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성장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어지는 6장에서는 앞 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체화’의 과정과는 다른 대비적인 서사를 풀어내고 있는데 이 장의 배경음악으로 설정된 베르디의 ‘레퀴엠’의 서사와 일치하는 ‘반동’과 ‘저항’의 에너지를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전체 ‘scene’을 통틀어 가장 큰 에너지의 크기를 보여주는 6장의 폭발하는 에너지는 무대의 끝맺음으로 이어지는 7장과 8장의 ‘공(空)’과 ‘정(静)’의 이미지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트렌스 젠더 복장의 무용수가 무대 위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트렌스 젠더’ 복장의 무용수를 무대 위로 등장시킨 것은 인간이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를 향하여 보여 줄 수 있는 ‘전복’을 향한 욕구의 최대치가 어쩌면 ‘부여된 성 역할의 부정’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 이해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러한 무대 연출을 통해 앞의 연속되는 ‘장(scene)’들에서 묘사되고 보여진 동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무용수의 움직임을 통해 전달되는 내러티브)과는 다른 정적이지만 파격적인 분장과 설정(시각적이며 정적인 연출)이 ‘중력의 무게’의 피상적 이미지를 구체적인 힘의 크기로 인식될 수 있게 즉, 에너지의 크기를 극대화시키는 기제로서 사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체 작품을 통하여 안무가로서 전달하고 그려내고자 했던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상(像)’은 8장에서 보여지는 군무의 움직임을 통해 묘사되고 있는데 외부적 ‘힘’에 대한 ‘흐름’의 형태로 보여지는 군무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외부적 힘을 저항해서 맞서는 형태가 아닌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긍정적인 ‘수용’의 힘으로 성장하는 인간을 그려내고자 했다.

신상현

무용가이자 조명디자이너이다. 현재는 공연 예술단체인 시어터-아(我)의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