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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의 키득거림

이재균

이재균 <퍼서비어런스 #중력> 2022
이재균 <인사이트 #ESP04650> 2022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일 년에 삼분의 일을 넘긴지 몇 해가 지났다. 새 마음 새 뜻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헐값에 팔아버린 카메라가 부메랑처럼 다시 내 손에 쥐어진 때부터였다. 섬세한 손끝이나 대단한 통찰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목표가 설정된 이상 끝을 보는 능력이 있는 걸 잘 아는 나이기에 그 능력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타겟은 뜬금없게도 과학과 공학이다. 문과에 미대 출신이라 비로소 취미로 즐길 수 있는 나만의 합법적 놀잇감이기 때문이다. 작업을 빌미로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을 보려는 다방면의 노력에 많은 친구(주로 동성)들이 부러워한다. 한껏 들뜬 방구석 연구원은 찾아가고, 서치하고, 질문하여 A4 백 장이 넘도록 자료를 수집한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그것을 또 해체하고, 나열하고, 분류하여 조합한다. 반 년을 책상을 부여잡고 밤새 낄낄거리다 붕 뜬 하루를 보내면 정신 차릴 새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어느덧 전문가가 되어있는 나는 또 다음 과정을 찾아가겠지.

이재균 <인사이트 #DAL006> 2023
이재균 <인사이트 #PIA14762(BathurstInlet)> 2022

비단 나에게 작업이라 함은 기약 없는 신세일수록 뜬구름 잡고 있진 않는지 되뇌이고, 동시에 작업이라는 매개물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존재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행위, 책임과 경험의 교차점이라 볼 수 있다. 내가 만드는 이미지는 과정의 끝을 서사하지만, 나 자체는 그 과정 사이 간극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지도로도 볼 수 없는 오지에서의 취침, 기밀 구역을 넘으며 덜덜 떠는 새벽, 사고를 수습하고 겨우 먹는 저녁 때문에 펜과 카메라를 든다.

이재균 <인사이트 #GH001> 2022
이재균 <인사이트 #GH002> 2022
이재균 <인사이트 #DAL088> 2023

이재균

B.1995 수집과 작업 사이의 묘한 형태를 배열하는 사람.
비물질 논쟁에 사진만큼 좋은 매체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