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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소외 받는 가장자리에서
발견한 위로들 시각 예술가 송성진

권혜란 사진·영상유돈희

시각 예술은 문자적으로 ‘보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미처 보지 못한 내면의 사연들을 외형으로 끌어내 시각적 감각으로 재정립하는 과정을 아우른다.
외부의 권위에 음지로 몰린 존재들을 위해 잔잔한 파문을 던지는 일, 송성진 작가에게 예술 작업이란 그런 ‘태도’를 뜻한다.
때론 고독한 저항처럼 보일 것이나, 누군가는 그의 작업을 위로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예술이 우리 곁에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 부산에서 ‘시각 예술가’로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특징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신다면요?
성진 저는 사진, 영상, 매체 그리고 설치 등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시각 예술가입니다.
제 작업의 특징을 소개하려면 제가 어떻게 작업을 시작했는지 대해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2003년 개인전을 위해 부산의 ‘용호농장’에서 촬영을 시작했었습니다. 그곳은 부산시에 붙어있지만,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사람들이 가기 꺼리던 그런 장소였어요. 처음엔 모르고 들어갔었는데, 그 공간을 촬영하는 어떤 일련의 과정에서 저 역시도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그 사람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도시에서 밀려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진행해 왔고, 그 주제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작품세계를 완성하는 데에 작가님께 영향을 끼친 인물이나 환경이 있을 것 같은데,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성진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라든지 혹은 선후배, 때로는 키우는 식물에게도 영감을 받죠. 지금은 제가 폐계(廢鷄)를 1년 반 정도 키우고 있어요. 보통 2년생 정도 되면 닭들은 산란능력이 떨어져 값싼 고기로 팔리게 되는데, 그런 닭들을 폐계라고 합니다. 자연적인 수명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알을 낳는 효율이 나빠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죠. 원래 닭의 수명은 최대 15년이나 됩니다.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작업에 대한 모티브를 얻기도 하고요.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지구 반대편이나 지구 저쪽 편에서 이 물건을 만들었을 어떤 노동자들을 생각한다거나, 어떤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또 그런 생각과 고민이 이 세상을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사건과 존재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아요.
작품에 사용되는 소재들이 일상적이지만, 모두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신선합니다.
이런 소재들은 어떻게 발굴하시나요?
성진 제가 추구하는 작품의 주제가 주로 우리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대한 것이다 보니 쉽게 버려지고 우리가 쓰다가 은폐시켜 버리는 것에 눈길과 손길, 발길이 가더라고요. 가령 잠시만 꽂혀있다가 버려지는 조화들이나 건설 현장에서 아무렇게나 버린 폐목재들, 지금 이 바닥에 깔린 카펫 같은 것들이죠. 먼저 소재에 시선이 가고 마음이 끌리면, 작업 단계로 유려하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우리가 횟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족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마침 ‘지금 우리의 시간’이라는 전시가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그 전시에 프로토타입으로 제출한 작품 하나가 있습니다. 수족관 사진을 연결해서 아파트랑 합성한 작품인데, 수족관 속 어류들이 살고 있는 모습과 우리가 건물 안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오버랩해서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 대해 되묻고 싶었어요. 저의 작업은 주로 이런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작년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인 ‘상시’를 통해 <땅을 임대했습니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습니다. 방치되고 있는 밭에 다채로운 예술을 접목하셨는데, 기획 의도를 들어보고 싶어요.
성진 작년, 도시 외곽을 다니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 땅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슬럼프를 겪고 있었는데, 버려지고 방치된 밭에서 위로받거나 재충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무계획으로 땅부터 임대했어요.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거둬내고 길을 닦을 때쯤 부산문화재단의 상시 프로젝트를 만나게 돼서 지금의 모습으로 가꿔나가고 있습니다. 농경지로 사용하지 않는 밭은 농약이나 화학 비료 등이 닿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곤충과 식물들이 자생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여러 작가를 초대해서 한 마디로 ‘놀자판’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전시 등 목적이 있는 예술 활동에 골몰하는 게 아니라 마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흙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자유분방한 시간을 보냈으면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놀고 쉬면서 삶을 재충전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꾸준한 활동 이력 속에서 강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대중들에게 회자 됐으면 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성진 2018년에 경기도 대부도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한평조차>입니다. 2016년, 부산문화재단의 국제 파견 레지던시를 통해 1년 동안 베를린에서 머물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들이었는데요. 여러 난민들이 폐공항에 모여 살아가는 모습을 자원봉사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했죠. 또 미얀마에 들렀을 땐, 로힝야족이 난민으로 전락해서 방글라데시로 강제 이주하는 장면을 실제로 목도하고, 그들의 삶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어요. 비가 오면 항상 홍수가 나는 지역에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데, 그들은 계속 집을 고치고 삶의 터전을 지켜내는 일을 고수했습니다. 이런 난민들의 이야기를 좀 더 다르게 전하고 싶어 작업한 것이 바로 <한평조차>입니다. 홍수 때문에 집이 물에 잠기는 상황을 가상으로 연출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부도의 갯벌에 집을 짓고 한두 달간 그 집을 지켰습니다. 조수간만의 차로 집이 잠길 때도 있고, 드러날 때도 있고, 그런 환경에서 집을 지켜내는 장면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달했었죠.
최근 서귀포시에서 개인전을 여셨습니다. <장례희망>이란 전시회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죽음이란 관념을 희망으로 이미지화한 것 같아요. 묘역에서 수집한 조화 등을 사용하셨다고요?
성진 네, 집안 어른의 장례를 치르면서 영락공원에서 버려진 조화들을 보게 되었어요. 그 쓰임이 다하지도 못한 채, 버려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 뒤로 공원묘역 등에서 조화를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개인전에선 기와집을 버려진 조화를 이용해 상여처럼 꾸며봤어요. 그 옛날 상여가 지녔던 심미성을 드러내고, 도시 한가운데 있으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코로나19로 순식간에 찾아오는 죽음이 많아지면서 주변인은 충분히 임종을 지켜줄 수 없었잖아요. 상실을 제대로 위로받을 만한 시간적 여유도 허락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죽음을 보는 곳은 도시 변두리나 도시 외곽의 공원묘역에 몰려 있죠. 그런 장소에 가야만 여기에 사람들이 죽어서 묻혀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데 실로 죽음은 우리 삶과 가깝게 결부되어 있고, 외면할 수 없잖아요. 그런 순리를 차라리 가까이 두고 생각해봤으면 해서, 도시의 한가운데에 죽음의 공간을 가지고 왔습니다. 흘러가는 죽음 속 위로받지 못한 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장례를 제시하면서 ‘장례희망’을 드리고 싶었던 거죠.
형식과 표현에 구애받지 않는 작가님의 작업 방식에 큰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전시 방법이나 주제가 있다면 이 글을 보실 독자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진 9월쯤, 임대한 밭에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관객 참여형 작품입니다. 무용과 접목해서 여러 예술가가 협업하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그때 방문하면 풀 위를 걸어 다니는 체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밭에서 자라는 풀들을 베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 높이가 1m 50cm 정도 됩니다. 거의 사람 어깨만큼 자라는 풀들 위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입니다. 밭에서 또 다른 스카이라인이 탄생하는 거죠. 멀리서 보면, 풀 위를 걷고 있는 착각이 들만한 장면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면, 관객은 풀 위를 걸어보는 겁니다. 어쩌면 약간은 위험(?)한, 그러나 약간은 흥미로운, 전에는 없었던 그런 형태의 작업을 보여드릴까 해요.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 느끼고, 어떤 가치를 얻어가기를 바라시나요?
성진 제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구제역, 난민 같은 사회적 이슈 등 사람들에게서 터부시되거나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들입니다. 어쩌면 이런 존재를 얘기하는 것이 그렇게 유쾌하게 다가가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저는 그런 대상을 직접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방식을 고집합니다. 시각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되도록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지점들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타인을 완벽하게 설득한다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단지 제 작품을 보고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깁니다.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제 작업은 겉으로 봐서는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기 때문에 쉽게 다가올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이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가 발판이 되어서 ‘그렇다면 나는 이런 생각에도 다다를 수 있구나’ 하는 감정이면 충분합니다. 저는 시공간의 구분 없이 언제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희망해요. 제 작품을 ‘경험’하시는 분들도 그런 가능성이 열리는 지점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향후 이루고 싶은 꿈이나 계획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성진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여태껏 삶과 죽음 그리고 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거창한 꿈이랄 건 없고요. 지금은 오히려 작업을 하면서 제가 점점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구제역으로 인해 땅속에 파묻힌 돼지들을 찾아다니면서 작업했던 과정을 통해 돼지가 어떻게 키워지고, 우리 식탁 위에까지 오르게 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당연하게 돼지의 삶에서 새로운 시야를 확장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족관과 아파트를 합성하는 작업을 하고 나선, 이젠 저는 횟집 수족관에 갇혀있는 그 물고기들을 보고 맛있겠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 스스로 제 작업 하나하나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성숙한 사회인으로서 살게 되는 계기도 발견하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발견의 순간’을 만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고, 예술을 이어 나가는 이유이지 않나 싶어요.
<한평조차(1坪潮差)> (송성진 사진제공)

송성진

시각 예술가. 사진, 영상, 설치 매체로 사용하여 사람, 장소, 생태와 관련된 현대사회의 이유와 상황을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2023년부터 두명마을의 버려진 밭을 임대해서 미술 프로젝트 ‘밖-앝’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