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자원 공학박사이다. 주로 홍수와 가뭄과 같은 물 관리를 연구하는 전문가로, 더 간단히 말하자면 (어감이 이상하지만) ‘물박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박사학위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대학시절 생각했던 진로가 최소 석사학위를 요구했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석사학위만 따고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날 생각이었다.
어떤 사소한 끌림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내 인생을 바꾼 사소함은 우연히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왔다. 작은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였다. 초청된 강사와 함께 토론하며 실습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세미나였다. 그런데 강사가 2년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술적 난제를 박사과정 선배들이 의견을 교환하며 이것저것 시도해보더니 20분만에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그 모습에 나는 충격과 존경을 느꼈다. ‘나도 박사과정 진학 후 저 정도의 문제 해결 능력만 키울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겠다.’라는 생각은 나를 박사과정 진학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공학박사가 되었다. (이렇게 간단히 ‘박사가 되었다’고 표현한 것처럼 쉽게 학위를 딴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선배들만큼 능력자가 되었냐고? 잘 모르겠다. 적어도 수자원 분야의 전문기관에 경력직으로 운 좋게 들어왔으니, 어느 정도는 이룬 셈이지 않을까?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나에게 질문한다면 주저 없이 ‘사명감’이라고 답할 것이다. 재난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조직에서는 ‘퇴톡금지’(퇴근 후 카톡 금지)’라는 단어는 금기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 조직은 지금과 같은 장마철에는 초비상상태를 유지한다. 24시간 깨어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지금도 내 휴대폰은 끊임없는 카톡 단톡방 알림으로 존재가치를 뽐내고 있다.
나는 이 조직의 일원이 된 후부터 내 모든 영혼을 회사에 갈아 넣었다. 생체리듬, 생활패턴, 심지어 취미까지 모든 생활의 중심을 회사에 맞추었다. 결혼 후에는 육아와 회사생활을 병행하기 위한 나만의 시간관리 노하우(?)를 개발했다. 아이와 함께 9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회사에 다시 출근하는 말도 안되는 생활을 수년간 이어 나갔다.
단지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친 사명감은 우월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책 『바른 마음』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타인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도덕적 우월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의 사명감도 극단적으로 발전하여 도덕적 우월주의로 변질되었다. 나의 워크에식과 업무 방식만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에 있다고 여겼다. 이는 불건전한 집단주의와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발전했다. 나와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동료들에게 불만을 느끼며 때로는 그들을 힐난했다. 삐뚤어진 권력욕과 성취욕에 나의 자아는 상처받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위축되었다.
독서라는 이름의 치유법
나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할세권’으로 이사가고 난 후 부터이다. 아내가 복직하면서 장모님께 아이들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부탁하기 위해 처가 근처로 이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에 최소 한시간이 걸리는 거리었다. 지하철 이용의 장점은 불가항력적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빨리 출근하고 싶어도 지하철의 속도는 정해져 있다.
출퇴근 시간은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급함을 느껴봐야 스트레스만 받는다. 강박적 불안을 버리니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강제적으로 얻게 된 출퇴근길 2시간을 의미 있게 쓰기로 했다. 휴대폰에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전부터 책 욕심은 많아서 누가 좋다고 하는 책들은 책장에 충분히 쌓아 두었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취미가 ‘책 수집’에서 독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책마다 다르긴 하지만 하루에 2시간이면 아무리 독해력이 떨어져도 하루에 최소 50페이지는 읽을 수 있다. 일주일에 1권은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소중하게 얻은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 위주로 독서를 시작했다. 삶의 지혜와 통찰을 얻는 것은 지식 습득 위주의 비문학 독서만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독서관 때문에, 책장엔 온통 사회과학, 자연과학, 그리고 심리학과 같은 비문학 서적만이 가득했다.
반면에 아내의 책장에는 소설책이 가득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고전 문학부터, 최근에 핫한 한국 작가들의 소설 그리고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마치 문학의 보물창고 같았다.
여러 벽돌책과의 힘겨운 씨름으로 지쳐가던 어느날, 아내의 책장에 꽂혀 있는 소설에 눈이 갔다. 지친 뇌를 쉬게 해 줄 거라는,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만만해 보이는 책을 집어들었다. 처음 집어든 소설은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사실 그렇게 만만히 볼 책은 아니었다). 나는 소설의 매력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스토리의 흡입력과 완독 후 밀려오는 마음속 울림은 비문학 도서가 결코 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비문학이 주입식 교육이라면 소설은 마치 자기주도 학습 같았다. 비문학 도서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새로움이었다.
그렇게 독서습관은 변해갔다.
아내의 추천으로 독서 모임에 가게 된 것도 내 독서관이 바뀐 큰 이유였다. 내 생각을 정리해 사람들 앞에서 펼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토론하는 경험은 혼자 하는 독서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무엇보다 토론을 준비하며 문학책을 읽다 보니, 내용을 요약하면서 작가의 의도와 내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독서의 질적 수준은 날로 향상되어 갔다.
공학도의 작가 흉내내기
독서의 완성은 글쓰기라고 했던가. 독서노트를 쓰고 내가 쓴 글을 읽어보는 즐거움은 독서와는 또 다른 성취감이었다. 그 흔한 일기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지만 내 생각을 담은 글을 무작정 써보기 시작했다. 물에 대한, 가족에 대한, 회사에 대한...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성취감과 자기만족으로 일단 쓰기 시작했다.
사실 평소 글을 좀 쓰는 편이다. 논문이나 보고서, 학술기사 같은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회색빛의 건조하고 딱딱한 글들... 그런 글만 수년간 써온 공학도의 에세이가 얼마나 재미없는지는 내가 초창기에 쓴 글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물론 공개할 생각은 없다. 이런 글을 누가 읽어 줄까. 우울감이 밀려왔다. 남들이 읽어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쓰기 강좌도 참여해보고, 온갖 ‘에세이 쓰는 법’, ‘재밌는 글쓰기’와 같은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찾아 보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많이 읽어보고 많이 써보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다행히 글감이 적지는 않다. 글을 쓰려고 생각하며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니 예전에는 볼 수 없던 것들이 보이더라. 모든 물과 관련된 경험이 문학적 사유와 감상,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삶이 다채로워짐을 느낀다.
물에 관한 내 생각을 재미있게 담아낸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언젠가는 주제 넘지만 소설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공학도가 중년에 이르러 문학도가 될 수 있을까?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때까지 물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다면, 이젠 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보려 한다. 물에 대한 나의 경험과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많은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 물 위에 뜬 내 생각들이 글을 통해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해본다.
김태형
환경부 낙동강홍수통제소에서 근무하면서, 낙동강 생활권의 국민들이 홍수로부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깨끗하고 맑은 물을 마실수 있도록 항상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