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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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 아픈 존재다. 하지만 막상 없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도,
우리 엄마의 마음도 공허해지는... 2년 전까지 부산문화재단은 나에게 ‘우리 회사’였다.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없다고 상상하면 허전한 그런 곳, 한때 내 이름과 늘 함께하던 존재.
지금은 사진 촬영업을 하는 2년 차 자영업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무심결에 부산문화재단을
‘우리 회사’라고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산문화재단이 내 삶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
는 존재임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앞날이 막막
하던 시절, 내가 간절히 입사하고 싶었던 곳이 바로 부산문화재단이었기 때문이다. 합격 소
식을 확인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의 부산문화재단은 나에게 자부심이었
고 나의 큰 포부를 담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부산문화재단에서의 첫 1~2년은 고비의 연속이었다. 업무보고 예산란에 오타를 내
거나 현수막 사이즈를 잘못 뽑는 실수는 흔하고, 행사 당일 내리던 비처럼 예상할 수 없는
일들까지...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이 연일 터
지던 시절이었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고 뻔뻔함이 기본으로 탑재된 시점에야 돌이켜보
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았고 작은 실수
에도 깊이 상심하던 ‘유리멘탈’ 시절이었기에 매 순간이 크나큰 위기처럼 느껴졌다.
그런 순간들마다 조용히 선배들이 나타나주었다. 때로는 문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가 하
면 때로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며 함께 화를 내주기도 하고, 때로는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들의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모두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또 후배들과 인턴 대
학생들이 정성스레 써준 편지, 점심시간에 함께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자던 팀장님, 좋은 경
험을 주어 고맙다고 인사해주던 시민들에 대한 기억도 내 회사 생활의 원동력이 되어주었
다. 내가 일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상처는 결국 사람들을 통해 치유되었고 나는 그 덕분
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부산문화재단에 근무하던 어느 날 연말 표창을 받으며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
다. “어떻게든 1인분 하게 만들어준 선배들에게 고맙습니다. 나도 선배들 같은 선배가 되겠
습니다.”라고... 뻔뻔하게도 그 이듬해 퇴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마음만큼은 진심이
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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