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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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에 내려 베를린으로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니 거짓말처럼 한국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국제적인 도시라더니 정작 로컬 슈퍼마켓에선 영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기
                       가 어려웠고, 점차 내가 ‘진짜 독일’에 왔구나를 실감했다.


                       레지던시에 지원한 이유는 순전히 독일에 가기 위해서였다. 몇 년 전 경험했던 독일의 차갑

                       고 선명한 공기도 좋았고, 독일어의 발음과 지나치게 개념적인 특징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작업과 관련된 이유가 가장 컸다.


                       작업의 소재로 집과 관련한 개인적인 기억에 대해 다루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사물의 외형
                       을 재현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어느새 개념이나 은유를 특정 이미지로 나타내는 방법들
                       을 실험하게 되었다. 작업이 변화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의 원형에서 멀어지며 마음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데 작업을 위해 억지로 기억을 상기
                       할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강렬한 감정은 여전히 작업의 원동력이었지만, 기억을
                       재료처럼 여러 방법으로 다루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역사의 트라우마, 특히 홀로코스트와 연관된 연구를 접하게 됐다. 특히 과거의
                       불의, 고통, 억압과 죽음과 관련하여 발터 벤야민이 과거, 역사를 구원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부분은 개인적인 기억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그가 제시한 은유로 잔해나 파편 조각은 특정
                       이미지를 연상시켜 외형적인 재현 방법을 넘어서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현재는 거대한 역사와는 너무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사적인 기억보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범위는 훨씬 깊고 어두웠다. 그저 방법론만 작업에 적용하는 것 같은 윤리적 고
                       민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해외 레지던시 파견지원 사업 공고를 보게 된 거다. 지원서에 고

                       민을 그대로 적었다. 이렇게 솔직한 지원서는 내가 봐도 처음이었다. 당장 내가 독일에 3개
                       월을 간다고 해도 외국인, 어쩌면 관광객의 관점에서 그 도시를 대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
                       만 일단 독일에 도착해 그곳의 사람들과 내 고민을 얘기해 본다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를 것
                       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도착한 지 나흘 만에 ‘Introduction Session’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작업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였다. 딱딱한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가장 편한 모습으로 서로의 작업에 대해 거침없이
                       질문했다. 그게 무례하다거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위 말해 피 터지
                       는 크리틱같지도 않았고, 작업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던지는 환영의 질문 같았다. 내 작품
                       발표에서는 부산의 도시 장면을 재현한 구성에 관심을 보였다. 작업이 추상적으로 변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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