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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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7년쯤 살다 보니 지루했다.
                      그래서 2010년 12월, 다니던 직장, 살던 집을 모두 정리했다.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게
                      핑계였지만, 그간 막연하게 꿈꾸던 일을 해 버리기로 작정한 게 이유였다.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스페인어도 배웠고, 한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은행 잔고가 있었다.
                      그래서 바로 ‘유럽 도시에서 살아 보기’에 나섰다. 시작은 1년 과정의 어학 연수였다.

                      그러다 여러 우연이 쌓이고, 이곳에서 살 운명이었는지 11년 째 여기에 머물고 있다.


                      현재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활기차고 아름다운 소도시 빌바오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처음은 일본어 수업이 전부였다. 바스크 사회에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이미 깊숙이 뿌리 내려 있어,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열기는 상당했다.
                      반면, 2015년 당시 빌바오에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곳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다 차츰 K-POP이나 K-DRAMA 같은 한국 문화가 확산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최초로 개설된 한국어반 학생들은 10대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거의가 K-POP에 매료된 어린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10대뿐만 아니라,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학원을 거쳐갔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한국 드라마에
                      반해서, 한국 문화가 좋아서, 한국 음식이 맛있어서, 한국에 여행 가고 싶어서 같은 이유였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대부분은 여성들이었지만, 남성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겨우 열 살 밖에 안 된 초등학교 남학생도, 30~40대 직장인도, 50대 대학교수도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학생이 있다. 정년 퇴임을 앞둔 대학교수였다.

                      아주 내향적이고 가족과도 소원했던 딸이 어느 날 ‘슈퍼주니어’의 노래를 듣고 있는 걸 보고,
                      딸을 이해하고 싶어서 자신도 낯선 아이돌 음악을 접하게 됐다는 분이었다. 한국어 노랫말을
                      자막 없이 이해하고 싶고, 손편지도 쓰고 싶다며 한국어를 배우러 온 것이었다. 슈퍼주니어를
                      함께 들으며 이 모녀는 콘서트도, 여행도 함께 다니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고 한다.
                      모두 한국어를 공부한 덕분이라며, 행복해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바스크의 이 작은 도시에서도 일본과 중국, 두 나라의 문화와 언어는 저변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이곳에서 처음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을 때에 비해 지금은 한국어를 강의하는 곳도
                      몇 군데 생기고, 학생수도 상당히 늘었다. 하지만 아직 두 나라의 영향력에는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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