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4호
P. 36
안무가님은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오셨습니다.
부산을 주 활동 무대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재현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부산은 문화적으로, 특히 댄스계를 주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들이 폐교되고 인프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무용 인구가 점차
줄어들었죠. 많은 예술가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었고요. 저 역시 어릴 때부터 외국이나
서울 같은 여러 지역에서 활동해 왔지만, 결국엔 부산으로 돌아왔어요. 고향이라는 점에서 부산이 심적으로
가장 잘 맞는 곳이라는 느껴졌거든요. 물론 활동 범위가 예전만큼 넓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역의 무용수들이 함께 모여서 노력한다면 충분히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지역이 어디든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저에게는 최고의 무대입니다.
다양한 팀에서 활동하시다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경희댄스시어터를 창단하게 되셨다고요?
재현 팀에서 활동하면서 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2016년에
경희댄스시어터를 창단하게 됐죠. 저는 주로 제 주변 이야기들을 다루는 편인데, 어머니 이야기부터 친구들,
사물, 심지어 애완동물까지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저한테는 조금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직접 보고 느낀 것들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도 제가 사회적으로 겪게 될 일들이나 당면할 주제들을
다루면서 작업할 것 같아요. 가장 잘 아는 것들로 작업하는 방식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지 않을까요.
<우물가 살인사건-그곳엔 사람이 산다> 작품도 회동수원지를 걷다가, 수몰 마을의
역사적 배경을 떠올리며 구상하신 것과 일맥상통한 부분 같아요. 지금까지 이러한 작업 방식으로
수많은 공연을 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재현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이라는 작품이에요. 저는 순정만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이미라 작가의 <인어공주를 위하여>라는 작품에서 큰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작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죠.
인어공주는 하체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답게 비치는 존재이면서 마지막에 물거품처럼
사라지잖아요.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에서도 신체적으로나 심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특수 계층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동화처럼 잔인하면서도 아름답게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죠.
이 작품을 계기로 저의 작업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의 잔혹함과 고통을 다루면서도,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메시지를 담아 내는 것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 되었죠.
지금도 그 부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