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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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그때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응모하였더니 우수 2회, 우량 3회, 가작 2회를 수상했다.
친구들이 대필을 요구하기까지도 했다.
그때 우수상을 받은 사람들이 시조 동인 <볍씨>를 결성했다. 필자는 우수상 등을 받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창립 멤버로는 동참하지 못하고 2년여 지나 입회했다. 신입 회원으로는
처음이었다. 창립 회원 8명에서 회원은 모두 9명이 되었다. 내가 입회하고 나서 2~3년
지난 사이에 양원식, 백승수 시인이 가입했고 회원은 모두 11명이 되었다. 그때 신입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했으며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허락되지 않았다.
<볍씨> 동인들은 한 달에 회비 1,000원을 내어 매달 식사 모임을 갖고 국밥에 소주 한잔을
하며 문학 활동과 우의를 다지며 가족 나들이도 하였다. <볍씨> 회원들은 1980년부터 매월
『부산시조』라는 제호의 회보를 발행하여 전국의 시조 시인과 관계 요로에 배포했다. 한 번에
500부 이상 발행하여 우송했는데 그때는 컴퓨터는커녕 타자기도 드물어 손글씨로 회보를
작성하여 출판사에 의뢰하여 인쇄했다. 봉투와 주소, 우편 번호까지 일일이 작성하여 우체국에
가서 하나하나 우표를 붙여 발송했다. 원고 청탁 관계, 전화비며 교통비, 식사까지 담당자가
흔쾌히 부담했다.
시조 연수회, 시조 낭송회, 시화전도 열었다. 모두 시조를 쓰는 것, 시조 활동을 보람으로 여기며
성의를 다 하였다. 전국 시조 시인들에게 회보를 보내면 격려의 편지와 엽서가 많이 왔다.
필자가 가야동에 살 때 <볍씨> 총무 일을 맡았는데 전국에서 한 달에 수십 통의 우편물이 오고
가니까 정보기관에서 요시찰 인물로 주시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은상, 이태극, 김상옥, 정완영,
이우종, 이형기 등의 많은 문인의 격려가 있었다.
<볍씨>의 활동 영역이 크게 넓혀진 것은 성파시조문학상의 제정과 성파시조백일장을
개설하면서였다. 부산일보 이진두 기자의 소개로 우리 회원이 그때 서운암 주지이자 현재
대한조계종 종정이신 성파스님을 찾아가서 지원을 부탁 드렸더니 흔쾌히 응해주셔서 1984년
가을부터 제1회 성파시조문학상을 부산일보 강당에서 시상했다. 지난해까지 38회 되도록 매년
실시했다. 성파시조백일장은 1985년부터 매년 해왔다. 성파스님은 시조뿐 아니라 도자기, 그림,
서예, 다도, 천연 염색, 한지 만들기 등 많은 분야의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직접 참여도 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주로 전통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신다.
<볍씨> 동인 활동은 또 하나 얘깃거리가 있다. 화전 시화회다. 1987년 진달래 꽃맞이로 통도사
계곡에서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붙여 먹는 놀이를 하다가 1989년부터 부산 여류 시조 시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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