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과 바다로 이야기 한 상 지어 올리다

글. 정재운 / 인터뷰. 이동윤

<이동윤 작가 소개>

먼저, <공감 그리고>의 독자님들께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고 있는 이동윤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꾼에 대하여>

지금은 신춘문예(영남일보)와 해양문학 공모전(부산일보, 해진공 주최) 대상 수상자로 화려하게 데뷔한 소설가로 마주하고 있습니다만,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땐 한 법무법인의 로고가 찍힌 명함을 받아들었단 말이죠. 듣기론 국제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셨고, 또한 영화감독님이세요. <10월의 이름들>, <죽어도 자이언츠> 같은 다큐 영화를 만드셨고, 영화비평 활동까지 하셨단 말이죠. 작가님만큼 전방위적인 복수 개의 정체성을 자랑하는 사람은 희소한 것 같습니다.

기자라는 일을 좋아했지만, 영화라는 커다란 매혹을 느낀 이가 현실에서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것이 기자였던 것이고, 지금 하고 있는 홍보마케팅 업입니다. 지금껏 2,5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했던 영화비평 공부도 이야기라는 거대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로 출발해 소설까지 닿았습니다. 여러 직업과 일을 해온 셈이지만, 저는 언제나 이야기를 생성해 내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중 가장 맞춤한 옷은?

아무래도 현재 직업인 홍보활동의 정체성이 가장 강하지요.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데뷔와 문학상 수상 등으로 삶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창작의 영역이 제 삶에 너무나 깊숙하게 들어오기도 했고요. 창작자로서의 삶으로 한 발 가깝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소설이 무엇인지 공부 중이고,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품고 살아간다기에는 조심스러움이 있습니다.

<먹고사니즘에 관한 소고(小考)>

질문자로서는 다소 의외인데요. 대개 서사성이 짙은 작가들을 보면, 그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은 성격적인 기질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어떤 정체성이 가장 내밀한가 물어보면 당연히 ‘소설가’, ‘작가’라고 대답할 것 같았습니다.

철이 조금 들었다 싶을 때부터 밥벌이에 대한 고민을 했었습니다. 스토리 텔링이라는 매혹에 흠뻑 빠져있었음에도 ‘먹고사니즘’의 문제를 떠올리면, 그보다 주가 될 순 없었습니다. 동경하는 것과 생활로 감당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비교적 일찍 선을 그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감’과 ‘영화감’이 따로 있는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결국 작가가 되셨습니다. 비현실의 매혹을 현실로 당겨온 도정이, 그 인력(引力)의 세월이 훗날의 작가님께 저력이 될 거란 말씀드려봅니다. 이번엔 작업 방식에 대한 얘길 여쭤보겠습니다. 소설부터 시나리오와 다큐멘터리까지, 매체를 넘나들며 서사를 구축하고 계신데, 활자와 영상이라는 매체의 운용 방식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건 영화감이야, 이건 소설감이야 하는 식의 기준이 있는지요?

영화에 대해 꿈을 품고 공부를 한 것은 십대 때부터였지만, 본격적으로 소설 습작기를 보낸 것은 4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쯤만 해도 소설과 영화의 제재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구분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양공모전 수상작품(「적도의 침묵」)의 경우도 70%가량 시나리오가 진행된 상황에서 소설화한 것이었거든요. 시나리오의 경우 분량면에서나 전개에 제약이 크지만, 소설의 경우 상대적으로 내면의 이야기를 함에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소설이 보다 인물과 상황에 몰입하기 좋다면, 시나리오는 거리두기가 용이한 것 같습니다.

<바다와 소년>

시나리오로 탄생할 뻔했던 작품이 소설로 태어났다는 얘기가 작품에 대한 흥미를 더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아직 작품을 접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작품 소개 부탁합니다.

<적도의 침묵>은 망망대해라는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바닥까지 드러나는지 묻는 소설입니다. 적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상선이 무대인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외부와의 통신이 완전히 끊기게 되죠. 겉으로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선원들의 심리는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칩니다. 육지의 계급이나 도덕적 법칙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절대적인 고립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게 변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고 간절한 연대와 생명력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창작 배경은?

외항선 항해사 친구가 있습니다. 삶의 궤적이 다르다 보니 마음만큼 자주 만나진 못하는데, 서른을 코앞에 두고, 몇 해 만에 만나 술을 들이부었습니다. 그날 들었던 이야기가 작품의 시발이 되었습니다. 배가 바다의 무풍지대를 지날 때였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 듯한 완벽한 적막과 어둠이 너무나 두려웠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들려준 바다 위에서의 생생한 고립의 서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땅뙈기 위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던 것이죠.

이동윤 작가님에게 바다란 어떤 의미일까요?

누군가에게 바다는 낭만적인 휴식이겠지만,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제겐 펄떡이는 '삶의 현장'이자 거대한 '밀실'에 가깝습니다. 해변의 화려한 불빛 너머에는 녹슨 닻을 내린 배들과 짠내 나는 항구의 치열한 민낯이 숨어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바다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건, 단순히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식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다 특유의 거대한 무심함에서 서사의 힌트가 발견되는 것 같아요. 인간이 육지에서 아무리 아등바등 갈등하고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어내도, 바다는 언제나 제 속도대로 무심하게 출렁일 뿐이잖아요. 그 압도적인 무심함 앞에서는 제 글의 얄팍한 군더더기가 아주 객관적으로 보이거든요.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서늘한 침묵을 품은 공간. 그 무서운 양면성이야말로 제 창작을 끊임없이 벼려내는 진짜 동력인 듯합니다.

<본격적인 창작자의 길을 걷다>

처음 '나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제가 2022년도에 기자생활을 접고,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을 합니다. 새로운 일과 기회가 주어졌는데, 보람이나 재미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처음엔 내 마음이 왜 그런지 영문을 모르겠더군요. 이전의 나와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고민하다보니 ‘창작’의 요소, 그러한 삶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한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펼쳐내고 싶다는 욕망 내지 충동에 대해 솔직하게 두 팔을 들고 항복을 해버린 셈입니다.

아이디어 고갈의 순간에 새로운 이야깃감을 건져 올리는 작가님만의 환기 방식이나 영감의 원천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예전엔 여행 같은 이벤트를 좇거나 기대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일상에 영감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흩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는 동네에서 대형견을 끌고 산책하는 노인을 봤어요. 혼자서 이렇게 공상을 해보는 거예요. “저 할아버지는 분명, 킬러일 거야. 그럼 개는? 말하는 로봇이지.” (웃음)

「낙수」(2026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나 「적도의 침묵」(2026 해양문학 공모전 대상작) 같은 작품들을 보면 묵직한 심상과 작가님만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장르나 매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작가님만의 코어가 있을 텐데요. 창작자로서 근래 천착하고 있거나, 작품을 통해 집요하게 파고들고자 하는 핵심 테마는 무엇입니까?

작품들을 놓고 단일한 주제나 테마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딜레마에 놓이는 상황과 인물들에 대해 쓰길 즐겨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형식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둠이 스민 짧은 문장들로 서사를 축조하는 방식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신인이 스스로의 주제와 형식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어색합니다. 많은 작품들로 독자를 만나고, 그분들이 제 글의 테마를 발견해주실 날을 고대해봅니다.
정재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설집 ‘경이로운 동그라미’(강, 2024)를 썼다.
인터뷰. 이동윤
2026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낙수'로 등단하고 '적도의 침묵'으로 2025 해양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시나리오와 영화 비평도 쓰고 있으며, 영화적인 글쓰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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