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부산시립미술관, 북극항로를 따라 글로벌로

글. 정종효

미술관의 변화

부산시가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는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이 세계 해상무역의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기회다. 세계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포스트 실크로드(Post-Silk Road)’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파급 효과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류뿐 아니라 에너지·조선·환경 등 여러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며 인류의 미래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부산은 그 중심에서 자본·물류·기술·문화예술을 연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 이제 경제적 도약과 발맞춰 부산의 문화예술도 세계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세워야 할 시기다.

역사적으로 미술의 발전에는 미학적·창의적 동력뿐 아니라 자본과 경제의 논리도 함께 작용해 왔다. 16세기 피렌체에서 코시모 1세 데 메디치(Cosimo I de’ Medici)가 건립을 지시한 우피치는 훗날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을 품은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으로 발전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엘리어스 애쉬몰(Elias Ashmole)의 수집품 기증을 바탕으로 애쉬몰리언 뮤지엄(Ashmolean Museum)이 설립되어 1683년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경제적 기반이 확대된 영국에서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등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이 차례로 설립됐다. 20세기에는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미술기관들이 성장했고, 뉴욕 맨해튼은 오늘날까지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 역시 경제 호황기에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며 각 지역의 미술관과 민간 컬렉션을 확충했다.

21세기의 기류는 아시아를 향해 전환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제·문화예술·역사 등 다양한 분야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는 17세기 후반 중국 문화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시누아즈리(Chinoiserie),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확산된 일본 문화의 영향인 자포니즘(Japonisme)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이런 변화들은 미술관에도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과제를 던진다. 북극항로의 개척으로 ‘포스트 실크로드(Post-Silk Road)’와 동행할 ‘포스트 뮤지엄(Post-Museum)’의 계획과 준비는 경제와 문화예술을 연계하는 세계화 전략으로 발전할 것이다. 미술관의 역할은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해 왔다. 연구, 전시, 교육, 수집·보존은 미술관의 기본적 역할이자 기능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술관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확대되면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시민의 다양한 문화예술 욕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즉, 대중은 미술관의 존재와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주체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2022년 프라하 대회에서 ‘대중을 위한 서비스 기관’, 그리고 ‘지역의 참여’에 대해 강조하는 미술관의 정의를 발표했다. 미술관의 변화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미래 미술관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재개관

그런 의미에서 리노베이션을 마무리하고 지난 9월 17일에 새로운 공간으로 재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새로운 공간에서 대중을 위해 수행해야 할 부산시립미술관의 장기적 역할을 몇 가지 언급하자면, 먼저 시민과 함께하는 공공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시민, 예술가, 대학, 지역 문화기관이 함께 기획하고 토론하는 개방형 미술관으로 변화해야 한다.

전시와 교육을 다양화하고 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민이 미술관에 머무는 시간을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든다면, 미술관은 공공의 장으로서 그 가치를 다할 것이다. 나아가 지역의 다양한 장르와 융합·협업해 만들어 내는 차별화된 새로운 콘텐츠는 글로컬 시대의 롤모델로 부상할 것이다. 둘째는, 해양성과 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경험 공간이다. 일본 팀랩(teamLab)의 디지털 아트 공간 연출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만의 조류, 파도, 해수면,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시각·청각적으로 경험하는 전시 공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부산의 바다를 단순한 전시 소재가 아니라 관람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환경으로 구현하고 간접 경험을 더해주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 디지털 작품을 보존하고 기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역량을 강화해야 하고, 작품과 자료의 확보를 위해서는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이 소통하며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는, 예술·해양과학·AI 융합 연구소의 기능이다. 예술가, 해양과학자, AI 연구자, 환경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부산만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해양성은 북극항로의 정책적 의미를 미학적 접근을 통해 부산 시민, 나아가 전 인류와 소통할 수 있는 전략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시 <퓨처 뮤지올로지> / 전시 <안전기지>(출처: 부산시립미술관)

1998년 부산시립미술관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개관한 지역미술관이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올 9월 17일 리노베이션이 마무리되고 재개관했다. 리노베이션 공사는 6년간의 준비와 2년간의 공사 끝에 마무리되었다. 공사 기간만큼이나 준비 기간도 중요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향후 30년을 내다보며 미술관의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약 47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대대적인 공사는 기존의 건물 외형을 유지하면서 내부 공간과 시설을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공사였다. 부분적인 보완보다 전체적인 변화를 통해 향후 30년의 비전을 담은 미술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공사였다. 개선 공사는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개관 후 노후화된 시설을 보수·보완하는 것, 또 하나는 향후 30년을 준비하는 미래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위한 공간 개선이었다.

전시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1945-1953> / 전시 <이 모든 어제의 미술관에게>(출처: 부산시립미술관)

먼저 노후 시설을 보완하기 위한 물리적 개선이다. 전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항온항습 시스템을 완비하고 수장고를 증설하여 어떤 종류의 작품을 전시해도 작품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전시 환경이 개선된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전시장이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전시의 맥락이 단절되는 공간을 통합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의 기능을 보완하였고, 대형·중형·소형의 전시 공간을 두루 갖추었다. 공간 배치의 변화도 중요한 개선 사항이다. 메인 도로로부터 돌아앉아 있었던 미술관의 주 출입구를 확보해 관람객을 맞이하는 구조로 개선되었다. 기존 1층 사무실 공간은 카페와 문화편집숍 등 관람객 편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하고, 다목적홀을 1층에 배치해 시민이 다양한 콘텐츠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실내외 공간이 연계되는 지하층에는 어린이 갤러리, 체험실, 도서 자료실 등을 마련해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 출입구에 들어섰을 때 1층 로비에서 3층까지 개방된 콩코스 구조는 시각적 개방감을 제공하고, 미술관의 움직임을 한눈에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층 사이를 개방해 시각적 개방감을 높인 부산시립미술관 로비 / 부산시립미술관의 야간 외관(출처: 부산시립미술관)

다음은 새롭게 조성한 공간을 채울 콘텐츠와 운영의 방향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형 미술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시민의 참여, 전문 기관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장기적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공간의 활용 방식을 바꾸고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재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은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장르와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콘텐츠를 다양화하며, 시민의 참여를 넓혀 기대를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부산의 해양성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시민과 함께 그 가능성을 확장해 나간다면, 미래 미술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북극항로가 열어갈 변화에 발맞춰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미술관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글.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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