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녹아내리는 찰나를 문화로 빚어내는 공간_코닝크리머리

글. 심규리
광안리 인근 골목에 자리한 코닝크리머리의 외관

아이스크림은 먹는 순간 가장 맛있고,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음식이다. 녹아버리면 형태도, 온도도, 감각도 되돌릴 수 없다. 코닝크리머리는 이러한 아이스크림 경험의 휘발성을 붙잡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소비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메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머물고, 브랜드의 감각을 경험하며, 하나의 취향을 선택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한 가치로 만들고 있는 코닝크리머리 기획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취향을 고르는 즐거움을 전하는 코닝크리머리의 젤라또

코닝 크리머리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거창한 계기보다는 제 친구, 가족, 동료들이 아이스크림을 조금 더 여유롭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코닝크리머리(CONEING CREAMERY)’라는 이름을 뜯어보면, ‘CONEING’은 아이스크림에 붙은 과자를 일컫는 ‘Cone’과 현재진행형 접미사 ‘ing’의 합성어입니다.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거꾸로 쥐고 먹은 뒤 점원의 반응을 관찰하는 밈(meme)에서 비롯된 단어이기도 하죠. ‘CREAMERY’는 유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매장, 대체로 아이스크림을 제조하는 매장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놀람을, 누군가는 웃음을, 또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는 이 행위가 제게는 각자의 방식대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다양한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다소 발칙한 밈처럼, ‘코닝’이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방식을 발칙하고 멋지게 제안하며, 나아가 사람들이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젤라또)이라는 소재 하나로 얼마나 다양한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이스크림이 커피 문화처럼 자연스레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코닝 크리머리가 만들고자 하는 아이스크림 경험은 단순히 ‘맛있는 아이스크림’ 그 이상일 것 같습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과 감정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삶의 순간순간 지금보다 더 자주 아이스크림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 코닝크리머리는 아이스크림을 맛있고, 올바르고, 멋들어지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서 같은 역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아이스크림이라는 경험재가 주는 즐거움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코닝크리머리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공간과 아이스크림이라는 아이템이 있으니, 이와 함께할 콘텐츠를 찾아 연결하는 방식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디저트와 함께하는 플리마켓, 디제잉 파티, 직장인 대상 아이스크림 만들기 클래스, 부산 지역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매달 큐레이팅을 통한 상영회, 무더운 여름 아이스크림과 함께한 코닝 리딩 클럽 등, 돌이켜보니 이 공간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식사 후 즐기는 디저트를 넘어 다양한 관심사 및 문화와 접목하다 보니,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타 지역의 관련 업계 분들도 많이 참여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킹도 이루어졌습니다.

아무튼, 일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취향을 선택해 보는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문화로 확장한 코닝크리머리의 기획 프로그램

브랜드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키워드가 공간이나 제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나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아이스크림을 본질적으로 휘발성이 강한 경험재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아이스크림은 구매한 뒤 길을 걸으며 먹거나 집에서 먹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행위는 있지만 그 시간을 공간 안에서 충분히 즐기는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커피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합니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동시에 대화하고, 일하고, 휴식하는 공간이지만, 아이스크림은 녹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서둘러 먹어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디저트이기 때문에 맛은 기억에 남을 수 있지만, 그 맛을 즐긴 시간까지 특별한 경험으로 남겨줄 공간은 부산에 많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코닝크리머리는 이 휘발적인 경험을 공간 안에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스크림을 하나의 문화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부산에서도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고, 계절과 관계없이 새로운 맛과 공간을 즐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커피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듯이, 아이스크림 역시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코닝크리머리가 그 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은 시작이 되길 바라기도 합니다 :)

머물며 대화할 수 있도록 꾸민 코닝크리머리의 매장 내부

그렇다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있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왜 수영구에서도 인적이 드문 이 골목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요?

부산은 관광지로서의 매력과 로컬의 색을 동시에 지닌 도시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관광지라도 그곳만의 고유한 지역색이 없다면 사람들이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로컬 자원과 이를 바탕으로 한 기획들이 서로 연결되며 부산만의 문화와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전에는 부산에서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해 서울로 올라가는 브랜드를 종종 보았지만, 최근에는 부산 안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성장하는 브랜드가 많아졌습니다. 저 역시 그런 변화 속에서 부산에 계속 머물며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닝크리머리를 시작한 이 골목은 광안리와 가까우면서도, 당시에는 오후가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지금은 주변에 카페들이 하나둘 생기며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주택과 빌라가 밀집해 있어 사람들의 실제 생활권이라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래서 이 골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가정’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가진 따뜻하고 편안한 정서가 ‘가정’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르고, 가족과 함께 나누거나 혼자만의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그런 아이스크림 공간을 만들고 싶어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획자님에게 ‘지역’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브랜드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역’은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함께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브랜드 역시 그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색연필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이야기를 대신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코닝크리머리도 그런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며, 또 누군가에게는 부산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장면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부산이라는 지역 안에서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부산을 대표하는 아이스크림(젤라또)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닝크리머리 대표와 브랜드 감각이 담긴 매장 풍경
인터뷰. 황명준
어떻게 하면 아이스크림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젤라또인
글. 심규리
부산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기획자와 예술가를 찾고있는 소통홍보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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