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초,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마스크와 일회용 용기, 택배 박스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까지 많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나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고민 끝에 시작한 것이 ‘비치코밍 프로젝트’였다.
바다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지만, 사실은 환경과 문화, 그리고 사람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5년을 보냈다. 바다를 걷고, 사람을 만나고, 버려진 것들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026년, 나는 또 다른 바다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쓰레기가 아니라 ‘역사’라는 이름의 파도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조선통신사다.
조선통신사는 단순한 외교 사절단이 아니다. 전쟁 이후, 관계를 회복하고 평화를 이어가기 위해 바다를 건넜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여정은 기록으로 남았고,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화기획자의 시선에서 보면, 조선통신사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건 ‘이동하는 문화 플랫폼’에 가깝다. 사람, 예술, 언어, 음식, 그리고 감정까지 함께 이동했다.
지금으로 치면 꽤 잘 기획된 국제 교류 프로젝트다. 그래서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걸 지금의 방식으로 다시 풀어낼 수 있을까?”
그동안 조선통신사 축제는 광복로 일대에서 열렸다. 익숙한 공간이고, 검증된 방식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게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북항친수공원이다.
부산의 과거가 출발했던 항구이자, 미래가 시작되는 공간이다. 바다를 바로 마주하고 있고, 도시의 흐름이 바뀌는 지점이다.
조선통신사가 출발했던
도시, 부산. 그리고 지금 다시 출발하는 도시, 부산. 이 두 시점을 하나로 겹쳐보면, 북항은 꽤 설득력 있는 무대가 된다.
이미 만들어진 틀 안에서 잘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그만큼 관람객은 ‘관객’에 머문다.
이번에는 그 경계를 조금 허물고 싶었다. 시민이 참여하고, 직접 경험하고, 결국 축제를 ‘완성’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전통과 현대가 섞이고, 미디어가 들어오고, 시민 참여가 중심이 된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그리고 외국인까지 함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조선통신사가 과거에 ‘사람을 잇는 여정’이었다면, 이번 축제는 ‘사람이 이어가는 축제’에 가깝다.
사실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건, 조선통신사보다도 ‘비치코밍’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한 번 쓰이고 버려진다. 구조물, 장식물, 인쇄물, 각종 소모품들. “어차피 행사니까…”라는 말로 넘어가기엔, 이미 너무 많은 걸
봐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려 했다. 재활용 가능한 구조물, 반복 사용이 가능한 장비, 최소한의 소모성 자재.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한 번 더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비치코밍을 하면서 배운 건, 작은 실천이 결국 방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조금은 더 유연한 느낌이 있다.
조선통신사가 바다를 건넜던 이유도, 결국은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축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도시와 사람을 잇고, 경험과 기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바다’가 있다.
그래서 조선통신사를 깊이 해석하지는 못한다. 대신 이렇게 바라본다.
“이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축제는 결국 ‘현재형 콘텐츠’다.
아무리 오래된 이야기라도, 지금의 언어로 풀리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닿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변형하고, 덧붙이고, 재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가벼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더
재미있어지기도 한다.
웹진 공감 그리고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아직 축제는 진행 중이다. 준비도 진행 중이고, 고민도 진행 중이다.
아마 축제가 끝난 뒤에야 “아, 이게 우리가 만든 조선통신사였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비치코밍을 시작했을 때도 바다였고, 지금 조선통신사 축제를 준비하는 곳도 바다다.
같은 바다지만,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있다.
바다는 늘 열려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에 이야기를 띄운다. 이번에는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기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경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라본다.
기획자가 바다 위에 띄운 축제의 청사진에 연출가는 어떤 숨결을 불어넣을까요?
수백 명의 행렬을 지휘하며 기록 속 역사를 오늘의 에너지로 되살려내는 진선미 연출가.
화려한 축제의 막이 오르기 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뜨겁게 움직이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