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산다는 것은 언제나 곁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해양 도시 부산은 시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거대한 힘이자, 세상을 향해 열린 개방성의 상징인 부산 정신을 형성해 온 웅장한 문화 뿌리입니다.
파도는 다른 모습으로 매번 밀려오지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습니다. 모든 강물을 받아들여 하나의 거대한 푸름을 완성하는 바다는 ‘무한한 포용’이자 ‘역동적인 다양성’ 그 자체입니다. 부산문화재단이 지향하는 예술의 가치 또한 이 바다의 물성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가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창의성의 파동을 존중하고, 그 파동들이 서로 접촉하고 공명하여 시민의 일상을 적시고, 마침내 ‘글로컬(Glocal)’이라는 더 넓은 바다로 항해하는 지도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부산의 해양문화는 박제된 과거의 유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갈치 시장의 거친 숨소리 속에, 피란 시절의 피란민을 받아들인 포용의 공동체 기억 속에,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신문물의 교류에, 그리고 해변을 산책하며 내면을 정화하는 시민들의 소박한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의 문화’ 그 자체입니다. 재단은 이러한 부산만의 해양 정체성을 현대적 패러다임으로 재해석하여 시민의 삶과 세계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과거 부산항을 떠나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었던 <조선통신사>는 부산 해양문화가 가진 평화와 교류의 DNA 입니다. 지난해, 261년 만에 오사카항에 재입항한 조선통신사선의 돛처럼, 우리 해양문화의 정체성 역시 과거의 역사적 자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지향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미래의 문화 콘텐츠로 변환하며 국경과 세대를 넘나드는 소통의 길을 열어왔습니다. 바다는 결코 단절의 벽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가장 넓고 자유로운 길임을 우리는 예술이라는 돛을 달고 매일같이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부산의 바다는 단순히 감상하는 풍경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제 바다는 우리가 함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생명의 실천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로 응답한 <비치코밍(Beachcombing)>은 바다의 잔해와 쓰레기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여, 바다가 소비의 공간이 아닌 ‘돌봄과 미래’의 공간으로 인식하게끔 했습니다. 해변에서 발견한 보잘것없는 조각들로 예술을 빚어내는 과정은 우리 삶의 결핍을 예술적 경험으로 채우고 치유하는 재단의 존재 이유기도 합니다.
<부산바다도서관>은 부산의 해양 정체성이 시민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문화 경험 으로 환경과 교육, 예술이 결합한 문화예술로 진화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다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거대한 창의적 교실입니다.
부산문화재단은 <비전 2035: 모두의 예술, 일상의 문화로 물결치는 글로컬 문화도시 부산>을 향해 먼 바다로 닻을 올립니다. 단순히 예산을 집행하고 사업을 관리하는 관성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부산의 풍부한 해양 자원을 발굴하여 그 가치를 증폭하고, 부산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부산 문화 ‘B-컬쳐’ 를 제안하고 추진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재단은 예술가와 시민, 로컬 콘텐츠와 산업, 지역과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확장하는 ‘B-컬처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플랫폼은 바다와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개방된 공간이자, 서로 다른 파동들이 만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는 다양성의 보고입니다.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파동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고, 시민에게는 삶의 굽이마다 예술이라는 해류가 흘러들어 활력을 얻게 하는 것, 이를 통해 문화예술의 자력적 생태계를 완성하는 플랫폼이 바로 재단이 완수해야 할 시대적 사명입니다.
바다를 오래 바라보면, 그곳엔 인간이 붙인 화려한 수식어들이 모두 씻겨 나가고 오직 살아있는 것들의 정직한 박동만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다는 스스로 길을 내지 않으나 누군가 그 위로 배를 띄우면 기꺼이 길이 되어줍니다. 예술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바다는 말이 없으나 쉼 없이 밀려오고 밀려갑니다. 문화예술 부산의 골목골목을 적시고 시민의 마음 깊은 곳에 닿을 때, 비로소 문화는 일상이 되고 삶은 예술이 될 것입니다.
비전 2035라는 푸른 항해를 시작하며, 저는 다시 바다를 봅니다.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여 제 색을 완성하듯, 우리도 멈추지 않는 항해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길 위에 시민과 예술가 여러분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부산의 바다가 우리 모두의 예술로 넘실거리는 그 풍경을 향해, 기꺼이 그리고 묵묵히 동행하겠습니다.